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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법학박사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주변에서 어떤 사람을 지칭하여 "그 사람 참 융통성 없다", "정말 요령 없는 사람이네"라고 하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국어사전을 보면, ‘융통성’이란 ‘형편이나 경우에 따라서 일을 이리저리 막힘 없이 잘 처리하는 재주나 능력’으로, ‘요령’이란 ‘적당히 해 넘기는 잔꾀’라고 해설하고 있다. 세상사는 데 어느 정도의 ‘융통성’과 ‘요령’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을 가리켜 ‘융통성 없다’ 또는 ‘요령 없다’고 비아냥거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 특히 법대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자들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심지어 예전에는 "법과 규정을 다 지키면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 결과가 좋으면 될 것 아니냐?"면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탱크형 임직원’이 일을 잘 한다는 칭찬을 받고, 법과 규정을 따지는 임직원을 ‘고지식하고 무능하다’고 질책하는 직장분위기가 있었는데, 아직도 그러한 나쁜 잔재가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그런데, ‘원칙과 기본을 무시하는 태도’, ‘과정과 절차를 경시하고 결과만 중시하는 태도’가 초래하는 부정적 폐해는 매우 크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추진한 사업은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거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암덩어리’가 되어 결과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부실채권의 발생 등). 사업을 추진했던 임직원들이 훗날 민·형사상 책임을 지거나 중징계를 받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법적 관점에서 보자면, ‘융통성’은 매우 큰 ‘법률위험(Legal Risk)’을 수반하는 것이다. 즉, 자신은 물론 그가 속한 조직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법률비용(Legal Cost)’을 최소화하려면 가급적 ‘융통성’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태도’야말로 개인과 기업 그리고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모든 차량운전자들이 좌·우회전시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도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정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밤 12시 무렵, 보행자도 없고 경찰관이나 지켜보는 사람조차 없는데도 모든 운전자들이 (낮 시간과 똑같이) 횡단보도 앞 정지선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무서울 만큼 완벽한’ 준법정신에 놀랐던 적이 있다. 이들을 ‘융통성 없다’고 비웃어야 하는 것일까?

 일본에서 연거푸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도 일본에 융통성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는 톨스토이를 연구하는 사람이 1천 명도 넘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록 ‘돈이 안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철저하게 몰입하는 융통성 없는 사람들’ 즉 각자의 소신, 신념, 양심, 지향에 따라 열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정진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인을 우습게 아는 세계유일의 국민은 한국민이다."라는 우스개말이 있다. 우리 민족에게 피해를 준 일본인들이 얄밉기는 하지만, 그들의 장점만큼은 배울 필요가 있다.

근면성실, 엄격한 준법정신, 타인에 대한 배려, 생각과 삶의 다양성 존중 등이 그 예이다. 이런 태도들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어야 우리나라에서도 ‘노벨과학상 수상’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은 "향후 노벨상에 도전할 세계 톱클래스 연구자를 양성하고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적 수준의 수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민관 합동의 전략적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적절한 정책방향이라고 본다.

그런데, ‘노벨과학상 수상’을 단순한 ‘국가적 목표’로 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국민적 성과’가 되도록 노력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도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고 과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융통성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되고 이들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속히 조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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