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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순휘 정치학박사
지난 11월 2일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2년 7개월만이고, 2012년 5월 13일 베이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노다 총리와의 회담이후 3년 6개월만의 한일 정상회담이다. 오래 걸린 시간만큼이나 한일간의 소원한 외교적 거리감을 느끼게하는 숫자들이다.

 여기에는 양국간 과거사와 관련한 책임론이 거론될 수 밖에 없는데 역내적으로 한일 양국을 둘러싼 주변 정세가 국가간의 이해관계에서 첨예하게 충돌하면서 합종연횡(合縱連橫)하는 형국으로서 구조역학적 변화가 과거보다 급격하게 돌아간다고 사료된다.

 정치군사적 관계로부터 ‘한일 FTA’, ‘TTP가입문제’, ‘RCEP’ 등 경제적 이합집산(離合集散)이 가속화되면서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급변의 시대에 진입한 것으로 진단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에는 국가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전쟁이라는 군사적 모험이 발생할 개연성이 증대하기 때문에 군사적 도발이 우려되는 북한을 상대해야하는 우리에게 정치경제외교의 안보적 영향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일 정상회담의 결과는 예상했던대로 외연적으로 관계회복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내재적으로는 과거사와 관련한 일본군 위안부(forced sexual slave)문제는 사과나 배상문제에 관한 전향적인 해결책 없이 원론적인 구두선(口頭禪)을 남긴 채 파행수준으로 끝났다.

 여기서 한일관계의 주요한 변수로서 상호인식의 문제를 재고해 봐야 한다. 불편한 한일관계의 근본에는 아베와 그를 추종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역사수정주의적 인식에 근거하기 때문에 아베 자신도 정치적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8월 14일 아베담화는 기대했던 식민지 지배에 대하여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수준이었기에 실망을 준 바 있었다.

 한일 관계의 공식적인 4대 중요문서는 고노담화(1993), 무라야마담화(1995),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공동선언(1998), 간담화(2010)가 있다.

특히 간 나오토(管直人) 총리가 2010년 8월 10일 발표한 담화는 "정치적 군사적 배경 아래 당시의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라고 하면서, "식민지 지배가 가져다 준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심정을 표명한다"고 밝혔던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여기에는 식민지 지배가 ‘불법(不法)’이라는 용어는 없지만 적어도 복잡한 당시 약육강식의 열강시대에서의 강자의 논리를 변명하지 않고 ‘일본 책임론’을 인정한 전격적인 사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간담화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적인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외교수사적으로 하수(下手)의 방책이 아닌지 외교당국의 소신을 묻고싶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외교부의 외교무능을 꼬집고 싶다.

 자고로 국제관계라는 것은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주장으로는 외교적으로 난제를 풀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내에서도 한국의 끊임없는 사죄요구에 불만이 팽배하다고 한다. 물론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가 사죄의 미사려구(美辭麗句)로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2005년 8월 26일 한일회담 문서공개와 관련 민관공동위원회의 발표에서 "반인도적 불법행위로서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고 한국정부의 공식입장을 확인한 만큼 외교부의 실무적인 해결을 추진하면서 국가적 국민적 감정싸움으로 지속되는 것은 차단해야 한다.

 지금 동북아 정세를 포함하여 미중 군사갈등 증폭 등 심각한 안보위협요인이 산재되어있는데 한일 양국이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입장에서 과거사의 족쇄를 차고는 성신지교(誠信之交)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국가안보적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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