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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분필이 칠판을 긁는 소리가 나면 몸서리가 쳐지면서 신경이 날카로웠던 학창 시절의 기억이 있다. 누구나 싫어하는 기습적인 소음인데 유난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것도 트라우마에 속하는지 단단한 물체에 긁기는 소리가 들리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그래도 누구는 웬만큼 참을만한데 누구한테는 절대 참아지지 않는 일들이 있어서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1박 2일 봉사를 잘 마치고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다. 봉사를 받은 측에서 식사대접을 했다. 깔끔한 손맛으로 조촐하지만 정성껏 차린 음식이 맛있었다.

시골 된장으로 자박하게 끓인 쌈된장에 유기농으로 키운 쌈채소가 인기가 좋았다. 몇 번이나 한 바구니씩 가져다 먹었다. 쌈채소 꽁지를 떼어내고 물기를 털어 쌈을 싸는 모 선생이 그슬려 인상을 쓰고 있던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분이 쌈채소 바구니를 던져버렸다.

식탁은 순식간에 난리가 나고 젓가락까지 던지고는 나가버렸다. 면전에 대놓고 말하기가 민망한, 더러워서 같이 밥을 먹을 수가 없다며 쪽쪽 빤 젓가락으로 쌈된장을 뒤적거리면 밥맛이 싹 달아난다고 제대로 한소리를 했다.

 모 선생과 식사를 하다보면 거슬리기는 했다. 반찬을 집어먹고 나면 꼭 젓가락을 소리 나게 쪽쪽 빨았다. 그러고는 그 젓가락으로 공용 반찬을 뒤적거렸다.

모 선생의 식사 습관이기는 한데 반찬에 젓가락을 가져가기가 께름칙해 같이 밥 먹기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모 선생은 유쾌해서 분위기도 잘 살리고 여러 사람 신경 써서 잘 챙겨주고 좋은 분인데 식사자리만은 비호감이다.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분이 사과를 했지만 모 선생도 우리도 분위기가 어색했다. 모 선생은 어린 시절 가난했던 집안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것에 대한 탐욕이 남아있어서라고 했다. 맛이 있으면 자꾸 다 먹고 싶어서 침 발라 놓는 유아적인 행동이 남아있다고 했다. 극복이 어려우면 조절은 할 수 있지 않냐고, 나중에 손자 손녀들한테 왕따 할머니 되기 십상이라고 쓴소리를 들었다.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속에 담긴 뜻은 가볍지 않기에 모 선생에게 충격요법이 되었을 것이다.

 소리혐오증이 있다고 한다. 특정한 소리에 민감해서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을 ‘미소포니아’라고 한다는데 보통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소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증상이다. 껌 씹는 소리, 헛기침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처럼 지속적으로 은근히 신경 쓰이는 소리에 과도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오늘 폭발한 그분도 ‘미소포니아’ 증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증상은 청각장애가 문제인 경우가 아니고 소리에 반응한 뇌가 어떻게 활성화되는가의 문제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특정 소리에 과잉 반응하는 사람들이 독창성과 창조성이 높아서 창작이나 혁신적인 일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사건의 그분도 화가로 공예가로 뛰어난 분이다.

 나이 들면서 거슬리는 것을 참는데 한계치가 낮아져 덜 참아지게 된다. 더위를 못 견뎌 선풍기나 에어컨을 자주 켜게 되고 가려운 곳은 손이 닿지 않으면 도구를 사용해서라도 긁어야 시원하다.

 음식점에서 시킨 맛없는 음식에 화가 나고 기다리는 일도 조급증인 나서 힘들다. 나이를 먹을수록 성숙해져 인품 고고한 사람으로 품위가 더해진다는 말에 완벽 동의를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겨나 갈등이 오기도 한다.

 무디어져서 이래도 저래도 그런가보다, 무기력하게 노쇠 되어가는 수동보다는 낫지 않나 싶어서 예민한 반응을 따르고 싶다. 과도한 반응이라고는 하지만 연구대상이 될 만큼 특이한 경우는 손꼽을 정도다.

 주위 살피지 않고 무뚝뚝한 노인으로 고집불통 나이 들어가는 것 보다는 명랑하고 따뜻한 예민이 좋다.

 좀 예민해져서 주위도 살펴보고 상대 입장도 챙겨주고 적당한 경쟁으로 활기도 있어지는 노년의 예민은 만추의 자연처럼 여유롭고 아름답다고 의미부여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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