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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범 아나운서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듭니다만 TV가 없던 시절에는 라디오 드라마가 꽤 인기가 많았습니다. 라디오가 대중화하는데 가장 공이 큰 장르가 바로 연속극(soap opera)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어르신들 중에는 옛날에 마을사람들이 라디오 있는 집에 삼삼오오 모여서 드라마를 듣곤 했다는 추억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에 미국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미국 3대 상업방송 네트워크 중의 하나인 CBS에서 시추에이션 드라마 ‘머큐리 극장’을 당시에 방송 편성하였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화성으로부터의 침공(The invasion from Mars)’이라는 제목의 공상 과학 드라마를 1938년 10월 30일에 방송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방송 내용은 이랬습니다. 저녁 8시에 시작된 그 프로그램은 시그널과 함께 ‘공상 과학 드라마’를 시작한다고 고지했고 이어서 간단한 뉴스와 일기예보가 방송되었습니다.

그리고 8시 12분께부터는 "거대한 운석이 뉴저지 주 한 공장에 떨어졌다"는 긴급 뉴스를 계속해서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격자들의 인터뷰와 화성인이 그 물체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소식이 뒤를 이어 보도 형식으로 방송했습니다.

이후 약 45분 동안은 ‘화성인들이 도시를 점령하고 있다’, ‘미국 군인의 동원령과 국무회의가 소집되었다’, ‘화성인과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내무부장관의 담화문까지 전달됐다’, ‘화성인이 뉴욕으로 접근해 오고 있으며,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등의 소식을 뉴스 보도형식으로 전했습니다.

 게다가 극적인 상황을 더하기 위해 아나운서는 침묵했고 무선기사들의 긴박한 호출소리와 대답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나운서는 지금 듣고 있는 방송은 공상 과학 드라마라는 고지를 다시 한 번 했고 직후에 프로그램 프로듀서(연출자)가 나와서 머큐리극장의 방송 내용을 해설하였습니다.

 이 방송극은 웰스(H. G. Wells)의 공상과학 소설인 『세계전쟁』을 각색한 ‘화성으로부터의 침공’이라는 방송 드라마였다고 아나운서가 덧붙여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들은 당시 미국의 청취자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결과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파급효과가 컸습니다. 드라마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 부분에, 실제 상황이 아니라 드라마라는 것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실제 상황으로 인식한 많은 사람들이 (일설에는 100만 명 이상) 패닉 상태에 빠졌고 그 중 상당수는 실제로 피난을 떠나기도 했다는 겁니다. 그 와중에 부상자 및 피해 상황이 속출했습니다.

 결국 CBS는 공개 사과했고 미국의 방송 정책을 담당하는 연방커뮤니케이션위원회(FCC)는 방송 드라마에서 보도형식을 취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 사건은 라디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방송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다’고 방송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TV, 인터넷 등의 매체가 없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매스미디어 학자들은 이 사례를 토대로 많은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합니다만 당시 학계에서는 매스미디어의 효과는 "총 맞은 것처럼 강력하다"는 ‘탄환이론(the bullet theory)’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매스미디어는 대중에게 직접적이고 강력하며 획일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론입니다. 이 해프닝은 탄환이론을 뒷받침하는 매우 강력한 사례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매스미디어가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요즘 TV 프로그램을 보면 과거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해서 겨루거나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70·80년대의 유행곡들을 10대 20대 젊은이들이 많은 듣고 따라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제 주변에는 자녀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져서 참 좋다는 말씀들을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30∼40년 세월을 뛰어넘어 음악을 매개로 해서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누리고 즐길 수 있다면 소통의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 또한 매스미디어의 긍정적 영향력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음악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훌륭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가족들 특히 자녀들이 좋아하는 리메이크 명곡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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