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굴뚝’은 산업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공해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낙인 찍히면서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그랬던 굴뚝이 다시 도심 한가운데 들어서기 시작했다. ‘에너지 자립화’란 이유에서지만 굴뚝은 대기환경에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철, 도심 하늘을 뿌옇게 덮어버리는 백연(white plume)은 미래 도시 환경을 해치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굴뚝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질소산화물 등 7가지 오염물질은 자동측정시스템(TMS)을 통해 실시간 감지, 환경기준치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백연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백연은 발전소와 산업용 보일러, 소각시설 등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설치된 냉각탑에서 생기는 수증기 정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온이 높을 때는 잘 보이지 않다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철이나 습도가 높을 때에만 육안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무감각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백연이 단순히 시각적으로 불쾌감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심 대기질 환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백연이 실제 우리 생활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속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흔히 백연은 인체에 무해한 수증기로 알려져 있다. 도심에 들어선 열병합발전소와 지역난방공사 측도 자신들은 천연액화가스(LNG)를 연료로 쓰기 때문에 굴뚝을 통해 배출되는 배기가스의 99% 이상이 수분이고, 나머지는 질소와 이산화탄소 등 무해한 성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지 추울 때 입김이 나오듯이 겨울철 잠시 보이는 현상이란 것이다. 이 때문에 집단민원이 발생해도 주민을 달래거나 설득해 땜질식 처방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굴뚝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백연과 달리 냉각탑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다. 굴뚝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백연은 높은 온도에서 그대로 배출돼 상충 기류와 섞여 빠르게 흩어지지만,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배출되는 냉각탑 백연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임종한 박사(인하대 산업의학과)는 "겨울철 냉각탑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는 일조권 침해 등 가시적인 생활민원 말고도 호흡기 질환 등 2차적인 환경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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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전 평택 오성열병합발전소 냉각탑에서 발생하고 있는 백연

 도심에 들어선 열병합발전소(설비용량 열 500Gcal/h 규모)의 경우 보통 10기 정도의 냉각탑을 가동하는데, 이 중 1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 양만 하루 400여t에 달한다. 예로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열 공급을 하고 있는 인천종합에너지㈜의 시설용량(열 416Gcal/전기 187㎽) 규모다.

 이 같은 수증기는 외부 온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겨울철에는 하얀 뭉게구름 피어나듯 주변을 덮는다. 이를 흔히 ‘백연 현상’이라 일컫는다.

 최근 학계에 발표된 백연 관련 연구자료를 보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수증기의 입자는 보통 0.3㎛지만 냉각탑에서 발생하는 백연은 평균 27㎛로 90배나 커 상당량의 수분을 포함하고 있다.

도심 자동차 매연 등 배기가스에 의해 발생하는 초미세먼지의 입자가 지름 2.5㎛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냉각탑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는 공기 중 증발되는 것이 아니라 먼지와 응결돼 땅으로 떨어져 새로운 오염원이 될 수 있다.

실제 수도권 내 대규모 열병합발전소와 지역난방이 들어선 신도시의 월별 미세먼지(PM-10) 측정치를 보면 12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연중 평균치를 모두 웃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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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냉각탑 순환수의 경우 일반 수돗물과 달리 여러 오염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여기서 발생하는 백연을 단순히 수증기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미 1998년 발표한 학술논문집에서도 냉각탑에 들어가는 순환수의 경우 냉각탑 팬(fan)을 통해 외부에 오염물질이 유입되고 박테리아 등 미생물이 번식하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에 소독약품 외에도 설비의 부식을 막기 위한 각종 화학물질이 첨가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극동환경화학 박만승 연구소장은 "냉각탑 수처리제에는 부식 방지에 효과적인 염소화합물이 첨가되는데, 온도가 높아지면 염소성분이 분해돼 발암성 물질을 생성할 수 있고 내성이 강한 레지오넬라균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에는 발전소 냉각탑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백연이 주변의 대기온도와 습도 등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지난 5월 ‘에너지경제’가 인용 보도한 ‘복합화력발전소에서의 백연 발생으로 인한 미기상변화연구(한국환경정책연구원)’ 논문에 따르면 냉각탑에 의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거지역에서 최소 500m 떨어져야 하고 백연저감 설계기준을 -4도, 상대습도 70% 이상으로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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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백연 문제는 발전소뿐만 아니다. 도심 대규모 사업장에 설치된 냉각탑도 예외는 아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위치한 S제약회사는 내년부터 입주가 시작되는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할 민원을 의식, 서둘러 공장 냉각탑 주변에 높은 담을 쌓았지만 하루 수백t씩 쏟아져 나오는 백연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백연을 없애는 것은 아직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냉각수 수질을 수시로 체크하고 외부 기관에도 검사를 의뢰해 최근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얻었다"며 주민 피해가 없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만 내놨다. 겨울만 되면 반복되는 백연 현상에 대한 뚜렷한 해결 방안은 찾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올해도 수도권 내 이 같은 대형 사업장과 발전소, 소각장, 지역난방이 들어선 신도시에는 백연의 공포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백연 현상은?

 발전소와 소각장, 산업시설 등 열을 필요로 하는 시설에서는 대부분 냉각탑(쿨링타워)을 운영한다. 냉각탑에 들어가는 냉각수는 열 공정에서 나온 순환수를 식히기 위한 것으로, 시설용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시간당 수백t의 물이 공급되고 증발된다.

설비용량 925㎽ 규모로 수도권 내 비상전력 생산과 분당신도시 16만 가구에 난방열을 공급하고 있는 분당복합화력발전소의 경우 24m 높이의 냉각탑 10기에서 시간당 순환되는 물의 양만 3천816t에 달한다. 이 중 냉각탑 1기에서 하루 403t의 물이 증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연은 이 같은 냉각탑에 공급되는 순환수가 외부의 찬 공기와 만나 발생하는 것으로, 겨울철 단골 민원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냉각탑에서 열을 빼앗긴 순환수의 온도는 평균 30~40℃로 외부 온도가 28℃ 이상이거나 습도가 낮을 경우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 온도가 이보다 낮고 습도가 높을 경우 냉각탑에서 발생하는 수증기가 응축돼 구름처럼 형성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각종 환경규제를 통해 설비 때부터 준공조건에 -2℃, 습도 70% 이상일 때만 백연이 보이도록 저감설비를 강제하고 있지만, 겨울철 한때 민원에 시달리면 된다는 안이함과 환경적 피해보다 경제적 손실이 더 크다는 이유로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글=지건태 기자 jus216@kihoilbo.co.kr

동영상=최달호 기자 bbor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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