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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역사소설가

친한 인물만 기용해서 나쁜 결과가 발생한 예는 삼국지에 무수히 등장한다. 친한 사람은 누굴까? 하나는 따르는 측근이고 다른 하나는 친척이다. 측근의 대부분은 역사적 교훈으로 볼 때 간신에 가깝고,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주변을 속이니 쉽게 알아보기 어렵다.

 친척의 경우 대개 외척들인데 능력이 모자란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권세 맛을 한 번 보기만 하면 자신도 망치고 나라도 거덜 낼 때까지 단물에 빠져 정신 차리지 못했다.

 이런 패거리가 끼치는 해악은 오늘에도 별로 다를 바 없다. 정치에서 한패거리가 만들어지면 반드시 이에 대항하는 다른 패거리가 만들어진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최대의 실패자 원소는 어린 아들 원상을 총애하여 그를 따르는 패거리가 만들어졌고, 큰아들 원담의 패거리가 이에 맞서다가 아예 멸문지화를 당했다.

외척에 의존하다가 자신과 후계자 모두를 망친 유표도 전형적인 패거리 싸움에 말려든 결과였다. 그렇다고 모든 정치적 패거리들을 한데 묶어 폄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삼국지가 시작하는 첫머리부터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를 보여주는 까닭이다. 이들 세 사람은 패거리를 만들었으나 의리(義理)와 신념(信念)으로 뭉쳤다. 패거리도 패거리 나름인 것이다.

 이제 내년 4월 총선까지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 자천타천으로 거명되는 현역과 출마예상 후보들의 발걸음이 부산하다.

좀 색다른 그림을 그리는 인물도 있긴 하겠으나 대략 ‘그 좋은 국회의원 자리’ 한번 해야겠다는 인물이 꽤 많다. 이들은 지금 어느 패거리에 줄을 서야 공천을 받고 승리할 수 있는지 열심히 주판알을 굴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은 얼마 전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그 다음에 ‘위선’이란 표현도 사용했다. ‘진실’과 ‘위선’이란 단어는 정치적으로 쓰기가 힘든 단어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위선인지는 금방 판명되는 것도 아니려니와 웬만한 확신이 없고서는 사용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을 얘기한 뒤 갖가지 해석이 있었다.

 SNS에는 조롱 섞인 감별법까지 나왔다. 흔히 정치공학이라 했다. 1963년에 연세대 주관중 교수가 「정치공학」이란 책을 펴내면서 일반에게 알려졌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 책이 나오자 당시 청와대가 모조리 사들여 절판시킨 후에 주관중 교수를 정치특보로 임명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정치군인들의 비밀교과서였다는 것이다. 공작적 정치에서 그 대상은 국민이다. 국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있을수록 정상적인 것과는 상반되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려는 수법이 집요하고 요란하다.

 1960년대 중반부터 대략 40년간 한국정치의 이면사는 얼마 전 영면하신 정치인 김영삼과 김대중의 경쟁과 협력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을 받들어 모신 패거리들을 이른바 상도동계, 동교동계라고 했다.

 삼국지로 견주어 말한다면 상도동계나 동교동계는 어느 정도 도원결의에 있는 의리와 신념을 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아니 상당부분 실제로 그러했다. 예를 들어 배신이란 말만해도 그렇다. 민주화의 동지가 어느 날 정치군인과 손잡는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배신이다.

하지만 정치군인과 손잡은 YS는 전임 군부대통령 둘을 감옥에 보내고 하나회를 해체하여 정치군인의 씨를 말리는 것으로 배신에 속죄했다. 한마디로 컸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진실의 가면을 쓰고, 박대통령을 배신한 것으로 돼 있는 유승민에 맞서려는 그 ‘진박(진실한 친박)’이나 자파 세력을 늘리기 위해 친노니 비노니 하며 계산하기 바쁜 이 시시껄렁하기 짝이 없는 속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패거리들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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