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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새벽, 올 겨울 들어 처음 눈다운 눈이 내렸다. 부천시 오정구에 위치한 열병합발전소에도 제법 많은 눈이 쏟아졌다. 하지만 발전소 굴뚝과 냉각탑에서 피어나는 희뿌연 백연과 버무려져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흰 눈이구나 할 정도다. 마치 설 명절을 앞두고 방앗간에서 흰 가래떡을 뽑아내며 피어나는 수증기처럼 발전소 주변이 온통 뿌옇다.

 발전소에서 피어나는 수증기도 그처럼 구수한 냄새가 나면 좋겠다 싶지만 왠지 찜찜함뿐이다.

 사실 이날 인근 아파트형 공장으로 출근한 직장인들은 좀처럼 밖에 나오질 않았다. 삼삼오오 나와 첫눈을 밟아 봄직도 할 텐데 모두가 꺼림칙한 듯 바깥 나들이를 피했다. 적막감마저 들 정도다. 발전소 수증기와 엉켜 유독 이곳에 내리는 눈송이는 솜사탕만큼이나 큼지막해 보였다. 이곳 발전소 측은 이미 오래전부터 백연의 무해성을 입증하려 애써 왔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발전소에서 불과 20~30여m 떨어진 아파트형 공장에서 근무하는 김사훈(44·가명)씨는 "수증기라고 하는데 어떨 땐 하수도 냄새 같은 것도 나고 사실 피부에 닿을까 봐 피하게 된다"고 했다.

 


최근에는 이곳 발전소 수증기에서 악취가 발생한다는 민원이 제기돼 발전소 측과 경기보건환경연구원, 그리고 제3의 기관에서 시료를 채취해 오염원에 대한 조사까지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악취와 백연은 무관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발전소 운영사인 GS파워 박민홍 발전운영팀장은 "발전소 냉각수는 일반 공업수와 달리 철저한 수처리 과정을 거쳐 미네랄 등 불순물이 완전히 제거된 순수한 물(H₂O)만 사용한다"며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백연은 인체에 전혀 무해한 수증기인데 심리적 요인이 클 것"이라고 했다.

 또 박 팀장은 "석탄이나 석유가 아닌 천연가스인 LNG를 태워 발전 터빈을 돌리는 만큼 오염물질이 배출될 염려가 없다"고 했다.

 그 근거로 냉각탑 유출수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납과 수은 등 중금속과 카드늄·벤젠 등 발암성분 등이 모두 기준치 이내거나 불검출된 것을 발전소 측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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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발전소 측은 주민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발전소 냉각탑에서 발생하는 백연을 줄이기 위한 시설을 설치했다.

 박 팀장은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발전소 냉각탑 10기 중 4기에 백연 저검 설비를 설치했고, 운영 성능에 따라 내년에도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또 24m 높이의 발전소 냉각탑에서 발생하는 백연은 기온이 낮은 1월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데, 이곳 발전소의 경우 240시간 이상 관측되고 있는 것으로 발전소 측은 밝혔다.

 

그동안 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냉각탑에서 발생하는 백연으로 인해 안개와 도로 결빙 발생, 일사량 감소와 같은 미기상 변화, 대기오염물질 증가 등의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그때마다 발전소 측과 관할 당국은 백연이 일반적인 수증기와 마찬가지로 인체에 무해하다는 설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냉각탑 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인천의 한 사회적 기업 대표 이모(55)씨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발전소 냉각탑의 경우 1년에 1번 정도 청소를 하는데, 낙엽 등 이물질 제거와 필터(충진제) 내 곰팡이와 물때(이끼) 제거를 위해 세척력이 뛰어난 락스 등을 사용한다.

 국내 한 백연 점검 설비 전문기업 관계자는 "발전소 냉각탑에 사용되는 냉각수의 경우 부식 방지를 위한 각종 산화제와 미생물 제거를 위한 살균제 등이 포함돼 있어 100% 순수한 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도 "냉각탑 열교환 배관에 이끼가 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차염(차아염소산나트륨) 처리를 한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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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염은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락스’의 주성분으로, 호흡곤란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며 자동차와 건축물의 철근을 부식시킬 수 있다. 또한 겨울철 도로에 날리면 결빙의 원인이 돼 교통사고를 유발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집단에너지시설인 세종천연가스발전소에 백연 저감 설비를 갖추도록 하고, 냉각탑에서 발생하는 수증기 발생조건을 기존 2℃ 이하 습도 70% 이상에서 -5℃ 이하, 습도 75%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또 최근에는 윤후덕(새정치·파주갑)의원 등 국회의원 16명이 공동 발의한 ‘집단에너지사업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다. 전국 아파트 250만 가구에 전력과 열을 공급하고 있는 열병합발전소로 해당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기존 신고제인 공급규정을 지역주민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당 시장과 군수, 구청장과 협의하도록 한 것이다.

 앞서 파주 교하지역 주민 872명은 인근 열병합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백연으로 일상생활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다며 백연 저감 등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윤 의원 측에 전달했다.

 인천환경운동연합 이혜경 사무처장은 "백연의 경우 유해성 물질 함유량이 기준치 이하라도 심리적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는 만큼 개선명령이 가능하다"며 "업체들이 수증기라고 주장하는 백연에 대해 철저한 성분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부천열병합발전소

부천시 오정구 삼정동에 위치한 부천열병합발전소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하는 복합화력 방식의 발전소로 100㎿급 발전설비 3기와 150㎿급 1기, 총 450㎿의 발전용량을 갖췄다.

 1993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이곳은 부천 상동·중동신도시 6만3천여 가구와 인천 삼산택지개발지구 5만6천여 가구 등에 지역 냉난방과 온수를 공급해 오고 있다.

2000년도에 GS파워㈜가 시설을 인수해 609㎿급으로 발전용량을 늘리기 위한 2호기 증설사업을 추진했다가 지역주민과 부천시의회의 반발에 부딪혀 현재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기존 발전설비의 내구연한이 2018년까지인데다, 부천시 전역에서 뉴타운 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2호기 증설에 따른 갈등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부천=최두환 기자 cdh9799@kihoilbo.co.kr

지건태 기자 jus216@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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