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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요즘 ‘응답하라 1988’ 드라마가 화제다. 27년이나 지난 옛 시절을 떠올리면 아련하고 따뜻하고 때론 웃음이 터지기도 해 본방 사수를 위해 드라마 방영 요일과 시간대를 챙긴다.

골목의 이웃들과 군침 도는 간식과 감성을 적시는 노래까지 추억 종합선물세트를 선사받는 시간이라 기다려진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흘러가면 힘들었던 일도 걸러져 녹화된 영상은 추억이란 이름을 달고 잔잔하게 저장되는 것 같다. 지금보다 젊었고 지금보다 덜 가졌고 지금보다 미완성이라 불안정해서 변형이 쉬운 시절이었지만 용케 잘 지나온 것 같아 잘 커 준 아들을 보는 것처럼 대견해진다.

 1988년이면 거의 30년 전이다. 지금 나이를 대입해 보면 인생 좀 안다고 생각했던 나이가 가소롭지만 젊음의 막바지를 보낸 시기라 꿈꾸고 고민하고 미래를 확신하려고 애썼던 시간대이기도 하다. 3년 만기 적금을 시작한 기억도 난다. 은행 이자가 15%였던가. 정확한 숫자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비자금 500만 원을 만드는 목표를 세우고 월 불입금 13만 원 3년 만기 적금을 들었었다.

 그러다 주식 광풍이 불었다. 증권회사 객장에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 집단 최면 같았던 주식 광풍이었다.

샐러리맨도, 자영업자도, 청년도, 노인도, 애기 업은 새댁도, 소 판 농부도 객장으로 출근을 했다. 대출받아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았던 호시절이었다. 부추기는 지인들 손에 이끌려 주식시장에 동참을 했었다. 제법 수익이 났고 돈 버는 일이 별거 아닌 것 같아서 목에 힘이 들어갔었다.

 건설도, 금융도, 무역도 호경기라 폭등 장세 트로이카 주로 장세를 이끌었던 주식시장이 1990년에 접어들면서 순식간에 내리막이었다.

깡통계좌가 속출하고 내 주식도 반의 반토막도 안 되는 성적표로 날아갔다. 당시에는 아까워 속이 쓰렸지만 전 재산도 아니고 큰손에 비하면 진짜 참새 눈물이라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았다.

 그래도 1988년 무렵을 돌아보면 추억거리가 풍성하다. 단군 이래 가장 큰 국제행사인 88올림픽 개최로 자긍심이 솟았던 시절이고, 1989년은 국기 하강식이 사라지고 24시 편의점이 생기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돼 공항이 붐비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잘 지내고 있지? 1988년의 나에게 인사를 건네 본다.

 2015년이 1주일 정도 남았다. 캐럴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사는 곳이 멀어 한참을 못 본 터라 반가웠다. 국정을 논하고 세계 평화를 걱정하는 거대 담론이 아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소소한 잡담이 편안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모든 궁금이 해결되고 길치라도 어디든 헤매지 않고 갈 수 있는 정보가 손 안에 들어있는 세상이다.

그래도 아날로그적 감성은 사람을 따뜻하게 만든다.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은 추억을 공유한 관계는 아무리 세월이 흐를지라도 뜸하게 만날지라도 곧장 마음이 통한다.

1988년 언저리를 공유했던 우리는 비교하고 견적 내며 각을 세울 필요가 없는 관계다. 한 시절 나이테를 함께 만들었던 추억은 결 고운 천으로 무늬를 만들어 같이 있으면 행복해진다.

 올해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감동하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한 일들이 365일에 골고루 들어있다. 2014년 4월에 침몰한 세월호 사건은 2015년 시작부터 한 해를 뒤덮었고,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로 뒤숭숭했고, 젊은이들은 3포에서 5포로 다시 7포 세대란 자조어를 만들어 내며 좌절했다.

그래도 따뜻하게 가슴을 적시는 일도, 자긍심을 가질 일도 있어서 굿거리장단 같은 흥을 더해 준 웃음도 들어있었던 한 해이다.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카페에 흐른다. 발표된 지 20년 된 캐럴이 여전히 흥겹다. 아픔이든 기쁨이든 세월에 묻어 두면 잘 익어서 노년에 꺼내볼 흘러간 세월은 좋았던 기억이 많았으면 한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20년이나 30년이 흐른 후 돌아본 2015년은 아름답게 갈무리돼 응답할 것이라 믿는다. 잘 가거라.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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