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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권력분립의 원리는 17세기 말 영국의 로크(John Locke)에 의해 입법권과 집행권의 2권분립론이 주창된 이후 18세기 초 프랑스의 몽테스키외(Montesquieu, Charles De)에 의해 3권분립주의로 발전됐다. 그리고 1787년 미국 헌법을 비롯해 세계 각국 헌법에 반영돼 근대 입헌민주주의 헌법의 본질적 요소가 됐다.

 3권분립주의는 국가 권력을 입법·행정·사법의 3권으로 나눠 각각 입법부·행정부·사법부에 분담시켜 서로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다.

 우리 헌법도 입법권은 국회에 속하고(제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하고(제66조 제4항),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제101조 제l항)고 규정해 3권분립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권력분립의 원리는 ‘인간에 대한 불신(不信)’의 관념을 전제한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유학사상가인 맹자(孟子)는 왕은 힘에 의한 정치인 ‘패도정치(覇道政治)’를 따르지 말고, 인과 덕에 의한 정치인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n)은 이상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는 지혜를 가진 철학자가 통치를 해야 한다는 ‘철인정치(哲人政治)’를 주장했다.

 한편, 과거 절대왕정시대에는 ‘왕권은 신이 부여한 것’이라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에 따라 ‘왕은 악을 행할 수 없다(King can do no wrong)’는 관념이 지배했다.

그러나 인류는 아무리 지혜롭고 덕망이 높은 통치자라 할지라도 그 권력이 집중되면 결국 독재와 부패에 이르게 됨으로써 국민들에게 큰 폐해를 끼치게 된다는 점을 역사를 통해 학습하게 됐다. ‘인간은 불완전하며 믿을 수 없다’라는 깨달음이 권력분립 이론의 탄생 배경이 된 것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으로부터 경제활성화 관련법 등 쟁점법안에 대한 직권상정 압박을 받고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18일 고(故) 이만섭 전 국회의장 영결식에서 "의회민주주의와 3권분립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쟁점법안들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함으로 인해 경제활성화와 청년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사정은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회의 고유 권한인 입법권이 헌법과 국회법의 정한 바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국회법 제85조는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한 때’ 등 3가지 경우에 한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16일 정 의장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경제위기 국가 비상사태’를 주장하며 법안 직권상정을 요구해 온 데 대해 "경제상황을 (전시·사변에 준하는)국가 비상사태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저는 동의할 수가 없다. 법률전문가들의 의견도 저와 같다"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의사 출신’이지만, 그의 견해는 법적 관점에서 타당해 보인다. 정 의장의 견해에 대해 법조인(검찰) 출신인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의 견해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 혼용무도는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일컫는 ‘혼용’과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뜻하는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유래한 ‘무도’가 합쳐진 표현으로, 국가 운영의 원칙과 기본이 무시돼 세상이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어지러운 것을 의미한다.

 오늘밤에 혼용무도를 하얗게 덮어 줄 눈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눈이 온다는 예보가 없다. 그래도 우리들 마음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이 마음처럼 깨끗하게 정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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