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군 농협안성교육원 교수.jpg
▲ 전성군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요즘 성탄절이 왜곡되고 있다. 낭비적인 경제관념 속에서 유흥을 즐기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본래 성탄절은 그리스도께서 영혼이 죽어 있는 인류에게 영생을 주시는 구세주로 탄생하신 날이다.

 한국의 성탄절 역사는 기독교의 전래로부터 시작된다. 천주교는 1700년대 후반, 개신교는 1800년대 후반에 각각 전래됐는데 당시부터 신자들은 성탄절을 중요하게 여겼다.

20세기 들어 한국에는 근대적 언론매체가 등장했는데, 언론 보도는 공감대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 주요 일간지에서는 12월이 되면 성탄절을 중요한 축일로 소개하고 기독교인들의 행사도 섬세하게 보도했다. 당시 농촌의 정서와는 달리 도시에서는 비기독교인들에게 노는 날로 인식됐다.

 성탄절은 해방 이후 더욱 중요해졌으며, 현재 성탄절은 종교와 상관없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한 해를 마감하는 길목에서 경제적 가치가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풍습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낭비적인 경제관념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초기 역사적인 성탄절 풍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성탄목을 세우는 크리스마스 트리(Christmas tree)의 풍습은 서독에서 시작됐다. 중세시대 아담과 이브에 대한 연극의 핵심 주제가 사과가 달린 낙원의 나무(전나무)였는데, 이는 에덴동산을 비유한 것이었다. 당시 독일인들은 아담과 이브의 축일인 12월 24일에 그들의 집에다 ‘낙원의 나무’를 세웠다.

그리고 그 나무에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 과자나 초들을 이용해 장식했다. 19세기 초 영국에 소개된 크리스마스 트리는 19세기 중엽에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독일의 알버트 공작에 의해 널리 보급돼 대중화됐다.

 이때 트리는 초, 과자 그리고 리본과 종이 사슬들이 달린 가지에 달아맨 데커레이션케이크 등으로 장식됐다.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으로 트리가 전해져서 오늘날의 화려한 트리로 자리잡았다.

 둘째, 크리스마스 최초 카드는 1843년 영국의 헨리 코울 경을 위해 존 호슬리가 제작한 코올-호슬리(Cole-Horsley)카드였다. 1860년 원색 인쇄 기술의 발달로 카드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성탄절이 되면 예쁜 성탄절 카드를 서로에게 전해주며 따뜻한 사랑을 주고받고 있다.

 셋째, 크리스마스 캐럴은 성탄절이 다가온다는 소식을 캐럴송으로 제일 먼저 알려 준다. 캐럴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탄절 노래의 최초의 편집자는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라고 한다. 누가복음에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몇 편의 찬송이 실려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성탄절 캐럴의 기초가 됐다. 아울러 성탄절을 즈음해 불리는 캐럴은 사람들에게 예수 탄생을 전하고, 또 그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게 하는 데 그 역할이 매우 크다.

 넷째, 성탄절 전날 밤에 양말을 걸어 놓는 풍습은 산타클로스로 잘 알려진 성 니콜라스에게서 내려오는 풍습이다. 당시 소아시아 미라의 도시를 관할하던 니콜라스 주교는 우연히 몰락한 귀족의 세 딸이 결혼 지참금이 없어 결혼을 못하고 있는 사연을 듣게 된다.

그는 이들의 딱한 처지를 고민한 끝에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성탄 전날 밤, 주교는 아무도 모르게 그 귀족의 집을 찾아가서 지참금이 든 지갑을 굴뚝을 통해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런데 지갑이 공교롭게도 말리기 위해 벽에 걸어 놓은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로 아이들은 뜻밖의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성탄절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양말을 걸어 놓게 됐다.

 다섯째, 성탄절에 행해지는 ‘선물 주기’는 동방박사들이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를 위해 황금, 몰약, 유향 같은 선물을 드린 것을 본받아 유래됐다. 남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은 소유하려고만 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극복한 것으로, 주는 이의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탄절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지갑을 열어 유흥을 즐기는 날이 아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경제적인 축제를 원한다면 도시교회와 농촌교회가 함께하는 사랑 축제를 열어야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