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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범 아나운서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뭇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 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이윤기 역, 열린책들)」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나비가 적절한 과정을 거쳐야 번데기에서 나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자연의 섭리를 깨뜨리면 안 된다는 화자의 깨달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 삶에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아무리 도와주려는 마음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커다란 부담이 되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소통의 문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친밀한 비평가’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가령 남편이 운전을 할 때 옆에 앉은 아내는 "속도가 빨라요", "빨간 불이에요", "신호를 지키세요" 등의 말을 하게 됩니다. 아내의 마음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조심해서 운전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일 겁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남편은 그것을 참견, 비난 등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소통의 노이즈가 생기게 됩니다.

 좋은 마음으로 비평을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느냐에 따라 속마음이 제대로 전달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이것을 ‘친밀한 비평’이라고 합니다. 한 해를 매조지는 시점입니다. 혹시라도 올 한 해 그 누구와든 소통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면 나의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좌절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오해 없이 소통할 수 있을지 방법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소통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 설득, 행동으로 이뤄집니다.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은 인지적 요인보다 정서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연구로 밝혀졌습니다. 대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태도나 의견은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의견은 아무리 논리적이라도 잘 채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설득을 통해 다른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사회성 튜닝’을 위해서는 자신의 호감도를 높이는 데 사용하라고 조언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장황한 논리적 설명보다 해당 동료의 옷차림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가볍게 칭찬해 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사안과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런 작은 칭찬을 통해 자신의 호감도를 높이면 자신의 뜻에 따라올 확률이 커지게 됩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환심 사기’라고 부릅니다. 적절한 아부와 칭찬은 변화를 한결 쉽게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독자 여러분 모두 소통의 달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 상대방의 사회성 튜닝을 잘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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