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면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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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면서 배운다
김실 대한결핵협회 인천지부장/전 인천시교육위원회 의장
  • 기호일보
  • 승인 2016.01.04
  •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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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실 대한결핵협회 인천지부장
우리 집에는 많은 기억할 날들이 있다. 첫 손자가 태어난 날, 집사람과의 결혼일 그리고 가족의 생일, 돌아가신 부모님 제삿날 등을 달력에 빼곡히 적어 놓고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 가운데 달력에 표시하지 않았지만 때만 되면 기억되는(기억하고 싶지 않지만)저절로 생각하는 날도 있다.

 잘 알고 지내던 병원장이 큰 일(교육감 선거)을 하기 전에 건강 한 번 체크하라고 해 별다른 생각 없이 집사람과 함께 시간을 내서 받았다. 병원으로부터 내원을 통보받고도 통상적인 작은 주의사항이 이겠거니, 특히 집사람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다.

 하지만 담당의사가 집사람에게 심각하게 던진 "다시 한 번 정밀검진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그 말 한마디에 집사람의 안색이 변하고, 끝나고 나오면서 말하지는 않지만 평소와 다르게 애써 침착하려 하지만 불안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후에 담당의사가 별로 심각하지 않으니 치료만 잘 받으면 된다고 하면서 날짜를 잡아서 2009년 7월 2일 암 수술을 받고, 5년을 넘게 해마다 그날이 되면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이 불안했다.

친한 친구의 집사람이 암 판정을 받기 전까지 건강하게 지내면서 오히려 골골한 남편 건강을 걱정하다 본인이 우연치 않게 검진을 받고 별스럽게 생각지 않다가 유명을 달리한 경우를 봤기 때문에 더욱 충격이 큰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5년이 지나 담당의사가 자신 있게 완치 판정을 내렸으나 지금도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전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불안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살아오고, 살아갈 동안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긴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재발 또는 전이됐을까봐 검진 때마다 마음을 졸였지만 늘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실없이 손자놈들 이야기를 하며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여간 고맙지 않다.

 사실 검진은 꼭 필요하지만 검진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와 가족이 받는 심리적 압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치료행위가 아닌 몸 상태를 알려 주는 상황에서 한마디 설명에 따라 검진 대상자는 예민해지고 더욱이 직접 옆에서 듣는 보호자와 전달해서 듣는 가족은 커다란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정말 멀쩡하다가도 검진을 앞두고 혹은 검진 후 자꾸 몸의 이곳저곳이 이상하게만 느껴지고 조금 기침만 해도 혹은 암 수술한 부위에서 가까운 곳이 스멀대거나, 소화가 잘 안 된다거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설칠 때 ‘혹시’하며 재발이나 전이를 떠올리는 본인도 그렇고 배우자와 가족이 겪는 그 스트레스의 강도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시간을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지냈다는 사실에 집사람에게 늘 감사히 생각하며, 전보다 더 가족을 챙기며 수시로 손자들에게 따뜻한 할머니로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여간 고맙지 않다.

그 뿐만 아니라 큰 어려움을 겪고 나서 어디를 가든 조그만 선행을 하고 싶어 한다. 산사에 가서 불전함에도, 교회나 성당에 가서도 조그만 헌금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길거리에 앉아 물건 파는 어르신을 보면 안쓰러워 무조건 사려고 하고, 전통시장에 들러 한 번도 푼돈 깎지 않고 팔아주려고 하는 착한 마음이 흐뭇하기도 하다.

가끔 딸아이와 어린 손자가 함께 걸으며 어쩌다 그냥 지나치면 "할머니, 사야지! 쓰지 않고 아끼면 똥 돼"하면서 웃음을 전해준다.

  아직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이 남은 젊은이처럼 아침저녁으로 시간 날 때마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운동하려고 하기에 이젠 병원 검진도 겁내지 않고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

 많은 날들이 있지만 아픔으로 기억되지 않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또 다른 의미 있는 날로 기억되도록 하면서 지켜보는 가족이 보고 배우기에 늘 건강하고 힘차게 오래 있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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