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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달 중순께 제주도에 출장을 다녀왔다. 추운 날씨였지만 여기저기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상가의 간판들이 한자로 표기된 곳도 많아 마치 중국의 어느 한 지역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듣던 대로 유커(旅客)들의 영향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제주도내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랐는데, 최근 제2공항 예정지가 발표된 이후 거래 문의가 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 가격이 한 달 만에 5배가 뛴 지역도 있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어느 음식점 주인의 말을 들으니, 부동산 가격 폭등 이후 제주도내에서 재산 분쟁이 크게 늘었는데, 우애가 좋던 형제 간에도 다툼을 벌이는 일이 많다고 한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모든 제주도민들을 부자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택시 기사의 말을 들으니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져서 삶의 의욕과 희망이 꺾여 있다고 한다.

더욱이 제주도내 토지 매입자의 절반 정도가 서울 등 외지인이라고 하니 이미 많은 토지가 투기꾼들에게 넘어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부동산 투기 차단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사후 약방문이 아닌지, 그리고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특정지역이 개발될 때 주변의 토지소유자들이 지가 상승의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은 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공공개발로 인해 발생된 지가 상승의 이익이 주변의 토지소유자들에게 온전히 귀속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왜냐하면 국가나 공공단체가 공공목적의 달성을 위해 막대한 공공재원을 투입해 특정지역을 개발함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은 ‘공공의 몫’으로 돌려지는 것이 타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 열풍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면서 이른바 ‘토지공개념(土地公槪念)’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는데, 그 결과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었다.

그런데 경제 활성화·투기 진정 등의 이유로 1998년 앞의 두 개의 법률이 폐지됐고 지금은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만 남았는데, 그마저도 개발이익의 환수가 미흡해 여전히 투기꾼들이 활개를 치는 경우가 많다.

 고대 로마의 울피아누스(Ulpianus)는 ‘정의(正義)’를 "각자에게 그의 몫을 돌리려는 항구적 의지(suum cuique tribuere)"라고 정의(定義)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공공의 몫’으로 돌려져야 할 ‘공공개발로 발생된 지가 상승의 이익’을 ‘주변의 토지소유자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며, 투기꾼 등 소수의 자들에게 ‘대박’을 안겨 주는 결과가 된다.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이른바 ‘고급 정보’를 가지고 투기를 벌여 대박을 얻는 것은 범죄이므로, 철저하게 추적해 엄단해야 한다.

 ‘대박’을 국어사전에서는 ‘운이 좋아 큰 이득을 남김’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전래동화인 「흥부전」에서 유래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추측된다. ‘큰 박’일수록 더 많은 보물이 들어 있기 때문에 ‘대박’이란 말이 생겨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사행심(射倖心)이 있다고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에는 ‘대박’에 대한 기대심리가 너무 확산돼 있다. ‘대박’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고 이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성실한 노력으로 살아가는 선량한 다수인의 희망을 꺾는 ‘독(毒)’이 될 수 있으므로 과도한 ‘대박 기대심리의 확산’은 경계해야 한다.

 헌법 제119조 제2항에 규정된 ‘경제 민주화’는 말로만 떠들 일이 아니라 ‘경제상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추구하는 일이 내용이 돼야 할 것이고, 이는 ‘대박’을 가급적 제약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투기로 인한 이익, 청탁으로 인한 이익, 탈세로 인한 이익 등 부정한 ‘대박’을 최대한 막아야 ‘정의로운 국가’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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