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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사회부장
설을 하루 앞둔 섣달그믐(양력 2월 7일)이었다. 아침 밥상을 물린 뒤 오랜만에 가족·친지들이 모두 둘러앉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녹록지 않은 현실을 묵묵히 버텨 내는 피붙이들에게 덕담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건강하자, 승진도 하고, 돈도 많이 벌자. 시집·장가 가고, 열심히 공부해서 바라던 학교에 꼭 붙자. 으라차차!’ 용기와 힘을 불어넣는 모처럼의 만남은 그렇게 농익어 가고 있었다.

 순간, TV 자막에 속보가 떴다. ‘북(北), 장거리 미사일 발사.’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이 TV에선 벌써 난리가 났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었다.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소집을 요청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한미연합사령관과 주한 미 대사와 한미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여야(與野) 할 것 없이 정치권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한목소리로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규탄했다.

 미국 백악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노골적인 위반행위이라고 북한을 나무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벌집을 쑤신 듯 나라 안팎이 온통 법석이었다.

 다과상에 빙 둘러앉아 있던 식구들은 오히려 차분했다. 되레 벼르고 별렀던 가족 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왜 깨뜨리냐는 투였다.

 ‘[특집]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TV 방송을 힐끗거리던 아저씨의 퉁명스러운 한마디는 "또 때가 된 모양이네!"였다. 대북정책에 대한 피로감에 나온 볼멘소리였다. 선거철만 되면 용케 튀어나오는 북풍(北風)의 낌새에 대한 넌더리였다.

 아저씨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불과 한 달 전 북한은 수소폭탄 핵실험을 했다. 그때 역시 국내외가 야단이었다.

 강력한 제재로 북한을 당장 고립무원의 상태로 몰아넣을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갔다. 되레 북한은 대륙간 장거리 미사일로 대응했다. 안으로는 대북정책의 부재, 밖으로는 국제 공조의 부실을 드러낸 셈이다.

 2012년 총선에도 북풍이 작동했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의 후유증이 식지 않았던 터였다.

 정치권은 천안함 사건을 선거에 이용했다. 여(與)는 햇볕정책이 무너졌다며, 야(野)는 안보정국으로 국민의 입과 귀를 막으려고 한다며 찧고 까불었다.

 여야의 선거판 북풍공작은 패착으로 끝나고 말았다. 시민들은 정치권에 농락당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인천만 하더라도 6대6, 표심은 견제와 균형을 갖춘 변화를 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정치권이 문제다.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 총선에서 인천의 선량(善良)은 동서로 정확히 반반으로 갈렸다. 강화·서구·중구·동구·옹진·남구·연수구 등지 서쪽은 여당, 남동구·부평구·계양구 등지 동쪽은 야당으로 나뉘었다.

 민의는 동서가 머리를 맞대 더 나은 인천을 일궈 내라는 명령이었을 게다.

 다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인천의 국회의원들은 그 준엄한 명령을 귓등으로조차 듣지 않았다. 금배지 12개 중 36%인 3개가 사법처리 대상으로 떨어졌거나 떨어질 위기에 있다. 그 중 둘은 북한의 ‘북’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최접경지역 주민의 선택을 받은 이들이다.

 그것도 모자라 인천의 야권은 둘로 쪼개졌다. 잔류와 결별, 이들의 결단은 과연 정치적 소신과 철학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냉혹한 계파정치에서 밀려난 이들이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이었을까?

 시민들은 그들의 선택에 별 관심이 없다. 막연한 기대와 대책 없는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참담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하다.

 아저씨가 한마디 또 내뱉는다. "정치권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난리법석 떠는 것처럼 진작 민생을 챙기지…(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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