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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매일 소주를 2병씩 마시는 어떤 80대 노인이 의사에게서 심각한 경고를 받았다. "술을 끊지 않으면 2년 이상 사실 수 없습니다. 간이 견디지 못해요." 그러나 평생 술을 즐겨 온 노인은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술을 마셨다.

 한데 2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노인은 여전히 건강을 유지했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면서 "의사가 뭐라 하던가요?"라고 물어봤다. 노인은 껄껄 웃으며 "그 의사 엉터리야. 나더러 2년을 못 산다고 하더니 자기가 1년도 못 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더라고…." 술에 관한 우스갯소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참 많이 마시는데, 필자도 술자리가 잦은 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15세 이상 인구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2010년 기준 6.2L인데, 우리나라는 2배에 달하는 12.3L이다. 한 달 평균 1L가량을 마시는 셈이다. 지난달 초 중동의 대표적인 방송인 알자지라가 한국의 음주문화를 ‘매우 폭력적’이라며 고발하는 방송을 25분간이나 방영했다고 하는데, 창피한 일이다.

어릴 적 "왜 어른들은 술을 많이 마실까" 의아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해가 됐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고통을 당하고,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체험하고, 권위주의 정치와 급속한 경제성장·경쟁을 온몸으로 맞닥뜨리면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이런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에 대해 관대한 인식을 갖게 될 만도 하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일 테지"라며 술로 인한 잘못을 웬만하면 덮어주는 게 우리네 인정의 한 단면이었다.

그러나 이제 술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막대한 폐해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사건·사고들(교통사고, 살인, 폭행, 성희롱 사건 등)이 술로 인해 초래된다. 그 뿐만 아니라 알코올중독 환자와 그 가족 및 이웃들이 당하는 고통도 매우 크다.

도로교통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음주운전 사고로 인해 연간 7천억 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하고,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음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연간 23조 원에 이른다.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알코올 및 건강 세계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음주로 인해 수명이 줄어드는 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사회연구원의 ‘음주정책지표와 OECD 국가 간 비교’(2014)를 보면 한국의 음주정책 평가지표(점수)는 7점(21점 만점)으로 조사 대상 30개국 중 22위에 머물러 술에 대한 규제가 매우 느슨한 나라에 속한다.

국가가 나서서 음주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시민에게 폭넓은 자유를 허용하는 선진국들에서도 술에 관해서는 꽤 엄격한 규제를 한다.

예컨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와 심야시간의 술 판매를 규제하고, 술 광고에 제약을 가하며, 청소년에 대한 음주 규제도 강하다. 취한 사람에게 술을 팔면 처벌하기도 한다.

심지어 미국조차도 와인과 도수 높은 술의 경우 소매점 판매시간이 자유롭지 않고, 일반음식점에서의 술 판매가 불허되며, 야구경기장 같은 곳에서도 음주가 제한된다. 그리고 위반 시에는 개인을 제재함은 물론이고 사업자에 대해서까지 영업정지·영업취소 등 강력한 제재를 한다.

"술을 자제하세요"라고 권하지만 음주자들이 이를 스스로 실천하기는 어렵다. 국가가 ‘술을 멀리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음주 규제가 흡연 규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다. 직장에서도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승진하려면 술을 잘 마셔야 한다"는 낡은 인식을 버리고 빈번한 회식도 지양해야 한다.

3월 초에는 전국의 대학에서 신입생 환영회와 OT, MT 등 행사로 부산해진다. 매년 과음으로 목숨을 잃은 신입생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데, 금년에는 그런 안타까운 소식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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