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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몇 해 전이다. 지역사회에서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위인이 내 지인에게 성희롱을 한 일이 있었다. 모임에서 만나면 손버릇이 나빴고, 입김 뿜어내며 귓바퀴 가까이에 대고 은밀한 말들을 뱉어내곤 했다고 한다.

 치욕스러워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용기를 내 털어놓은 지인의 이야기에 모두 경악했다. 결정적인 증거는 그 사람이 보낸 문자다. 지인이 공개한 문자는 수치심을 자극할 내용이었고 보는 우리도 기분이 나빴다.

다혈질 모 씨는 당장 찾아가서 그 사람의 부인에게 사실을 알리고 공개 사과를 받아 내자고 했다. 일이 일파만파로 커지면 피해자인 지인이 덤터기를 쓸 수도 있으니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를 했다.

그 사람의 부인을 찾아가 사실을 알리는 일이 최선인가 아닌가 의견이 분분했고, 공개적으로 공론화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했다. 당사자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 빠른 해결책이란 중론에 따라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당사자는 니글한 대화를 이어갔다.

단호하고 냉철하게 지인은 상대를 제압했고, 머쓱해진 상대는 억지 위압으로 지인을 오히려 협박했다. 세상에 알려지면 험한 시선을 받는 쪽은 내가 아니고 너라며, 여자가 헤프게 처신했으니 이런 일이 생긴 거라고 세상 사람들은 판단할 것이다. 누구 말이 먹힐지 생각해 보라고 엄포를 놓았다.

어처구니없었다. 고약스러운 말들은 듣기에 민망했다. 지인은 한방을 날렸다. 공개 불가한 한마디에 상대는 무릎을 꿇었다. 모든 공식적인 활동을 그만두고 자숙하며 살겠다고 읍소했다. 근래에 다시 슬금슬금 활동을 개시한 그 사람은 이중적 인성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며 위선으로 잘 살고 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행 관련 뉴스를 보면 예전에는 여자가 빌미를 준 것도 있을 것이란 지레짐작으로 피해자인 여성에게 일부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었다.

이런 시각의 부당성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지라 피해 당사자의 고통을 절절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지인의 사례를 직접 경험하고 나서 편파적인 내 시각의 모순을 바로잡았다. 흥밋거리로 뒷말하기 좋아하는 세상에 용기 있게 가해자를 고발하는 성폭력 피해여성들의 결단과 용기에 응원을 보낸다.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교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3월 입학 초가 되면 단골 뉴스가 성추문, 성희롱, 성폭력이다. 올해도 예외 없이 성 모럴헤저드 뉴스가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교수와 제자 간의 수직적 권력을 악용한 성범죄뿐만 아니라 대학생들 간의 성폭력 사건도 해마다 급격히 늘고 있는 실정이다.

 2010년 들면서 1천여 건이 넘는 대학생 간의 성폭력 사건은 해마다 늘어나 작년에는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하니 경찰에 접수돼 공개된 건 외에 은밀하게 묻힌 사건은 엄청난 숫자일 것이 분명하다. 성추행은 신입생 환영회나 축제 같은 대학 내 행사에 단골 뉴스거리가 된 지 오래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현실이 됐다.

서울대학교에서 올해 신입생부터 인권·성폭력 예방교육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도록 의무화했다고 한다.

최고의 지성이 모인 서울대학교에서 좋은 머리보다 인성은 열등했던 사람이 교수 직권을 악용해 ‘우 조교 성희롱 사건’, ‘강모 교수의 제자 성폭행 사건’들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교수, 교직원, 학생이 인권·성평등 교육 이수 의무화로 인권친화적인 사회구성원이 될 준비를 해 나간다는 소식이 반갑다.

서울대학교에서 만든 인권·성평등 프로그램의 교육효과를 높이 평가한 연세대, 포스텍, KAIST 등 10여 개 대학에서 이 교육 프로그램을 구매했다 한다.

안전·성평등 친화적인 사회구성원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에 가슴으로 공감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고, 살 만한 세상에서 행복지수 높은 사회가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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