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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총선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자들의 유세 발언도 그 수위를 점차 높여 가고 있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도 투표일이 다가오고 선거운동이 과열되면서 공약이 남발하고, 점차 상대와 상대당에 대한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동물들처럼 인간에게도 입은 음식을 먹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수단이다. 하지만 인간의 입은 섭취의 수단 이외에 말을 할 수 있는 긴요한 표현수단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간의 입은 음식을 먹기보다 말을 하는 데 더 적합하게 구조화돼 있다. 말의 의미는 라틴어로 혀에서 유래됐는데, 이는 혀가 음식물을 소화시키기보다 말을 하는 데 우선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임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결국 말은 혀 놀림을 뜻하는데, 이 행위가 종종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말은 발화가 아닌 청취에서, 화자가 아닌 듣는 사람에 의해서 그 가치가 결정된다. 따라서 말은 화자가 하지만 말의 시비는 청자가 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채 내뱉은 말이 화마(話魔)로 찾아오는 경우가 빈번하다. 말실수로 이번 총선 공천에서 탈락하고 무소속으로 나선 인천지역의 유력한 현역 정치인의 사정도 이러한 말의 속성에 기인한다.

 그렇지만 한국사회는 말실수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교활하고 비열한 행태에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슨 말을 누가 왜 했는지만 따질 뿐, 그 말을 누가 왜 몰래 녹취해서 공개했는가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한 채 실수한 당사자의 발언에만 날을 세운다. 물론 이러한 현상도 한국 정치 수준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우울한 현실 가운데 한 모습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말은 하는 사람의 의도보다 듣는 사람의 해석이 우선이다. 따라서 "이런 뜻으로 말했다"보다 "이런 뜻으로 들었다"가 더 부각된다.

그래서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보다 나쁜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듯이 말은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에 못지않게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결국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말보다 기분 상하지 않게 하는 말이 더 잘하는 말이다.

 선거에서 떨어지거나 시험에서 불합격하는 것은 두려움에 기인하는 측면이 강하다. 모든 선거가 그렇듯이 상대에 대한 유언비어 날조와 집요한 비난은 자신의 당선에 대한 열망에서가 아니라 낙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실패를 각오해야 성공도 이루고 당선이나 합격도 가능하다.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불안 역시 원치 않는 결과를 부인하거나 회피할 때 유발되고 증폭된다. 얻고자 하는 바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별개 문제이며, 후자가 전자보다 우선이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것도 같은 이치다. 예컨대 경쟁의 좁은 문을 통과하려면 두려움을 제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과도한 애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애정과 애착이 다르듯이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그 목표에 집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불안감의 요인과 극복 대안을 외부에서 더 적극적으로 찾기도 한다. 특히 선거에 임하는 후보자에게 그 방편은 경쟁자에 대한 중상모략과 각종 폭로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선거에서 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경쟁 후보자에 대한 야비한 공격이나 공약의 과도한 남발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미 국회의 세종시 이전이나 동남권 신공항 건설 같은 거품 공약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사실에 근거한다.

두려움은 주변을 민감하게 경계하고 자신을 과장하기도 하는데 특히 선거에서 이 경계심은 곧잘 말실수로 이어지고, 과장은 빈공약이나 허위 공약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두려움을 털어내야 지혜와 묘수도 생기고 행운도 불러들인다.

 비록 불가피하게 이전투구의 상황이 조장되더라도 선거에서는 두려움 없이 정직하고 당당하게 유권자들에게 후보자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진정성을 보여 주는 것이 최선이다.

 낙선에 대한 두려움은 유권자를 계몽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악의적인 말로 상대를 공격하도록 부추긴다. 그리고 그 말은 화살이 돼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스스로 쳐 놓은 덫에 걸려 혀끝에 달려 있는 칼에 베이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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