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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범 아나운서
미국의 논리학자 알프레드 코집스키 박사는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The map is not the territory)"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과 실제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지도란 우리 생각 속의 현실을 은유하며, 영토는 실제의 현실을 의미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대개 생각 속의 현실과 실제 현실을 혼동하며 살고 있고,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른다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소통할 때 우리 모두가 똑같은 지도를 그리고 똑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갈등과 충돌이 발생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형상화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술가이자 일본 도쿄조형대학 교수인 이케가미 히데히로는 자신의 저서에서 흥미있는 화제를 던집니다. 예를 들어 ‘아기 공룡 둘리’라고 소리를 내서 말한다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둘리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형태 등이 떠오르게 됩니다.

 말하는 사람(화자)의 머릿속 이미지가 듣는 사람(청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된 것이니까 당연히 커뮤니케이션이 성립된 것입니다. 그런데 ‘둘리’를 본 적도 없고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이미지도 떠올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화자와 청자,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과 수용하는 사람이 같은 코드를 지니고 있어야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집니다. 만일 ‘의자’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청자는 직장인, 학생, 주부 등등 각자의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이미지를 떠올릴 것입니다. 직장인들은 회사의 업무용 의자를, 학생들은 학교의 의자를, 주부들은 집에 있는 식탁 의자를 제일 먼저 생각해 낼 것입니다.

 이케가미 교수는 이런 강의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둘씩 짝 짓게 하고, 한 사람에게만 선으로만 구성된 간단한 그림을 보여 주고 그것을 자신의 짝인 다른 학생에게 말로 설명하게 합니다.

 그리고 설명을 들은 학생이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는 것입니다. 원래의 이미지와 가까울수록 언어 정보로의 변환이 잘 이뤄진 것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됐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한 ‘지도’와 ‘영토’의 차이를 알게 하고 그 사이의 간극을 줄여가기 위한 작업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실제 생활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대화지능」의 저자인 주디스 글레이저는 "대화란 역동적이고 상호적이며 포괄적"이라고 설명합니다. 대화는 정보를 나누고 지시하고 우리 생각을 전달하는 등의 기존 역할 이외에도 훨씬 더 심오하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이기는(윈-윈) 건강한 대화를 위해서는 대화지능이 높아야 하는데, 이것은 신경화학적 영향을 미치며, 관계와 성공을 강화하게 하고,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는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소통합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대화의 기술은 계발 가능한 영역입니다.

 얼마 전 모 TV 방송의 프로그램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아저씨, 어쩌다 보니 개저씨’라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개념 없는 아저씨’의 줄임말이란 해석과 개와 아저씨를 더한 표현이라는 해석이 공존하는 ‘개저씨’란 말이 불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위 체크리스트도 등장했습니다. 식당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에게 반말을 주로 사용하고, 상대방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묻는다거나 성적 농담, 폭언,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주변에 강요하는 등등이 들어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한국사회의 오랜 권력서열 오남용 문화와 갈등 현상을 압축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이 프로그램도 소통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는 유언무언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당연히 건강한 대화, 좋은 관계 형성으로 가는 데 크나큰 걸림돌일 것입니다. ‘지도’와 ‘영토’가 엄연히 다릅니다. 그것을 깨닫고 대화를 통해 그 두 가지를 하나로 모으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의 간극을 좁혀 나가야 한 차원 더 높은 성공적이고 유기적인 인간관계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건강한 대화를 위해서 실천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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