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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사회부장

투표를 하루 앞둔 선거 마지막 날 여야 할 것 없이 후보자들이 둘러대는 말이 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힘껏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인사(人事)’는 기필코 대한민국의 리더가 되겠다는 후보자가 갖춰야 할 자질과 도리일 테고, ‘천명(天命)’은 우리나라가 잘 되길 소망하면서 기꺼이 투표장으로 향하는 유권자의 표심일 게다.

 후보들에게 묻고 싶다. 정령 4·13 총선이 진인사(盡人事)의 선거판이었나? 정치란 본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모여 다른 사고를 하는 집단을 항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은 투쟁과 타협의 연속이다. 하물며 정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그 투쟁의 강도는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싶다. 중상(中傷)과 모략(謀略)으로 정책선거는 실종됐다. 거짓으로 덧씌워진 선전·선동과 남의 약점을 곧 나의 호기로 삼는 유언비어가 선거판을 지배하고 있다. 오로지 나만이 옳아 상대방 흠집 내기에 바쁜 고집과 아집이 선거판을 그득 채우고 있다.

 양보나 이해는 도무지 찾아볼 길이 없다. 독선과 오만이 두텁게 쌓인 대결과 갈등이 4·13 총선 판을 흐리고 있다. 진흙탕도 이런 진흙탕이 없을 지경이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발 디딜 틈 없이 만원인 기차가 막 플랫폼을 빠져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도록 달려 온 청년이 겨우 기차에 올라탔다. 아뿔싸, 새로 산 신발 한 짝이 벗겨져 그만 기차 밖으로 떨어졌다. 기차는 벌써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 청년은 주저 없이 나머지 한쪽 신발을 벗어 기차 밖으로 떨어진 다른 한쪽 신발을 향해 내던졌다. "아니, 왜 신발을 던져 버리는 거요?" 청년이 대답했다. "어차피 한쪽밖에 없는 신발을 못 신을 바에는 누군가가 그걸 쓰게 하면 낫지요." 그 청년이 바로 인도를 건국한 간디였다. ‘위대한 정신’이라는 뜻을 가진 ‘마하트마(mahatma)’의 이름을 얻은 그는 인도의 수상이 된다.

 공자(孔子)는 지도자가 끊어야 할 4가지(絶四)를 꼽았다. 그 첫째가 주관적인 억측을 하지 않는 무의(毋意)다. 근거도 없이 사사로운 의견을 가진 리더가 있으면 그 조직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자기의 견해만 옳다고 여기면서 다른 사람의 충고나 도움을 내치지 말아야 한다는 무필(毋必)이 그 둘째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구시대적인 관념에만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무고(毋固)가 셋째다. 넷째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무아(毋我)다. 공자는 절사(絶四)를 통해 리더의 자격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손자병법에 ‘도유소불유(塗有所不由)’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길처럼 보이더라도 가서는 안 될 길이 있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가서는 안 될 길과 가져서는 안 될 물건이 있다. 그 길은 독선의 길이고, 그 물건은 탐욕의 물건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사람이 사람에 대한 평가다. 물건은 제각각 값이 있고 가치가 매겨져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때론 존경을 받다가도 일순간 비난의 대상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기에 선거철 유권자는 선택 앞에서 고민스럽다.

 고려 때 문신이자 문학가였던 이규보는 사람에 대한 평가의 잣대를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그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하며 살고 있느냐다." 투표장에 가기 전 유권자들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자신의 역량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나머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만이 능사인 줄 아는 후보자들이 이번 선거판에 적잖다. 능력과 지혜가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를 꿈꾸면 화(禍)는 결국 시민들에게 돌아온다.

 유권자들이여! 내일 투표장에서 만큼은 매의 눈을 갖자.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후보가 누군지 솎아내자. 세상의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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