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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짧은 봄밤을 뒤척이다가 아침을 맞는다. 하루가 피곤하고 머리가 무겁다. 잠을 자 보려고 애쓰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권장하는 적정 수면시간이 8시간이라 지켜야 한다는 강박까지 생겨서 예민해진다. 수면 부족으로 생기는 질환이 염려가 되고, 몸도 마음도 무기력해지면서 불면 후유증이 더해져 갔다.

 안대를 하고 귀마개를 하고 수면 유도를 도와준다는 뇌파 사운드를 내보내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까지 다운받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수면제에 의존하는 친구가 처방을 받으라고 여러 번 조언을 했다. 무슨 오기인지 약으로 잠들기가 싫었다.

 불면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숙면을 위한 해결책이 넘쳤다. 멜라토닌 분비량을 촉진하는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고, 숙면 드링크도 있고, 수면(Sleep)과 경제(Economy)의 합성어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까지 등장했다. 경제적 가치로 측정되는 수면비용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 창출을 최선이라 여기는 경제원칙에까지 영역을 넓힌 것이다. 잠을 못 자서, 잠이 안 와서 생겨나는 비용을 최소화해야 이익이 커진다는 경제논리가 마뜩잖아도 듣고 보면 맞는 말이라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 정보인 비대면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침실의 온도를 재어 보고, 이불 속 온도도 체크해 보고, 이불 속의 습도까지 관리했다. 대체로 권장치에 가까웠다. 오히려 온도계나 습도계를 들고 침실을 서성대는 내가 비정상인 것 같아 그만뒀다.

 오래전 옷걸이로 전락한 운동기구를 타 보고, 집 안을 정리하고, 아무것도 넣지 않은 따뜻한 물을 마셨다. 잠들기 전에는 자극적인 일체의 일들을 하지 말라 했다. 격한 운동, 카페인 음료, 스마트폰, 자극적인 소설도 영화도 금지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아서 연필을 정성스럽게 깎아서 노트를 펴고 앉았다. 좀 전까지 신경쓰였던 아주 가끔 들리는 바깥 소음이 묻히고 창밖의 불빛도 자극이 아니다. 사각사각 글씨를 쓰는 연필소리가 들릴 만큼 고용하다. 감성이 풀어져 쓸거리가 줄줄이 나온다. 내일 밝은 대낮이면 민망해질 감성팔이 글이 된다 해도 지금은 마음에 충만하다.

 불면은 마음의 갱년기 증상인 것 같다. 내려놓고 물러서서 지켜봐 주고 현재를 수긍하고 베풀어 주라는 나와 현실의 내가 갈등하는 마음의 사춘기다.

 마흔이 넘어서면 모든 일에 어른이라고 할 만은 하지만 모든 일에 다 경험이 있지는 않다. 살아가는 일마다 시작한 지 처음이라 경험이 일천할 뿐인데, 완벽과 성숙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자신이 부당하다는 내용도 보인다. 타인보다 자신에게 에누리 없이 냉철한 까칠을 비판한 글이다. 위로가 된다.

 단숨에 숙면 이상으로 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잠들기까지의 시간이 단축되고 숙면에 들지 못할까봐 초조한 마음도 덜해진다. 나이 먹어가는 것에 비해 신통치 못한 자신에게 업적 완수 못한 영업사원처럼 조바심이 난 것인가.

스스로 진단하고 스스로 처방하는 자가 진료도 돌팔이 의료행위임을 깨달았으니 그만두는 것이 마땅히 자신에 대한 예의겠다. 머리만 대면 잠들었던 시절을 그리워만 말고 불면의 시간도 내 것이기에 악몽처럼 진저리칠 일만은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든다.

 침실에 라벤더 화분을 들여놓고 봄꽃 화분 작은 것도 데려왔다. 향기테라피 전문가의 말대로 심신의 피로 회복과 숙면을 기대하며 자가 최면을 걸어본다. 하나 더, 국민이 선잠 잘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무차별 문자와 전화 공세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쩌렁쩌렁한 마이크 소리로 과부하 애정공세를 펼치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공약과 극진한 국민사랑도 조만간 숙면유도제가 돼 줄 것이란 기대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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