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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역사소설가
여전히 ‘밥’이 화두다. 청년은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이고, 중년은 밥벌이 기간을 연장시켜 보려고 허덕이며, 노년은 백세시대의 대책으로 발버둥이다. TV에서도 밥 짓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대부분 남자들이 음식을 한다. 이제는 남녀가 따로 없다. 밥그릇은 공평하고 밥벌이는 모두에게 신성한 노동이 됐다는 의미일까. 벌써 5년 넘게 2% 저성장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밥그릇은 의미가 다르다.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 건 국민의 밥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제 논에 물대기’로 분주해 보인다. 4월 총선에 나타난 뜻밖의 결과를 놓고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소야대의 국회를 만드는 것이었을까. 3당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을까. 박근혜정부의 레임덕을 앞당기는 것이었을까. 그놈의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것이었을까.

물론 그런 열망도 없지 않았을 테지만 그런 것들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그동안 숱하게 운위됐던 개혁, 갖가지 이합집산을 일삼으며 걸핏하면 반복하던 낡은 정치 타파, 민생을 앞세운 결과가 흐지부지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밥벌이가 국민의 밥그릇을 채우기에 앞서 자신들부터 챙기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정치활동이 총선이나 대선이라는 꼭짓점을 향해 움직이는지, 왜 멀쩡하던 정치인과 고위 관료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홍위병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지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밥벌이’에 대한 그들만의 방식을 발견한다.

 남보다 쉽게 자신의 ‘더 큰 밥그릇’을 채우려고 ‘보스의 후광(後光)’에 기대어 무슨 계파라는 모임에 적극적이고 독자적인 비전이나 철학은 접어 두는지를 알게 된다.

그런 이들을 지켜보며 가족의 식탁을 걱정해야 하는 국민이 정치에 대해 냉소적이 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는지. 정치가 왜소해지는 당연한 귀결이다. 새 정치 운운하는 모습도 ‘새 밥그릇’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걸 대다수는 알고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게 불확실한 시대라고 한다. 역설적으로 확실한 것은 우리가 불확실성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것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이웃인 중국과 일본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터이나 분명 다른 부분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내수 진작으로 밥그릇을 만들 힘이 있다. ‘1조 달러, 1억 인구’의 조건이 갖춰져 있다. 전 세계 200여 국가 중 경제력 1조 달러, 인구 1억 명 이상을 만족시키는 나라는 이들 두 나라 외에 미국·인도·브라질·러시아·멕시코뿐이니까 우리가 그 속에 끼지 못했다고 의기소침할 일은 아니다. 그래도 경제력이 1조 달러를 훌쩍 넘었으니 나름 어깨를 펴도 괜찮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의 밥그릇에 대한 방식이 혁명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정치가 걸림돌이 되고, 자칫 저성장 고령화 시대의 인기 직종을 구하려는 정치 구직자들의 줄서기 장으로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일당독재 국가라고 하지만 중국의 ‘권력 엘리트’들은 말단 관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능력을 시험 받으며 길러진다.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사람을 탈락시키며 걸러지는 구조다. 고도의 자기절제가 요구되는 고독한 경쟁 속에서 검증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처럼 선거를 통해 정치 샛별로 떠오르는, 이른바 하루아침에 지도자가 되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정치구조를 넘어 희망과 활력의 정서를 견인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꿀 수 있게 하는 역동성 있는 시스템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선행돼야 할 조건이다. ‘밥그릇’에 대한 인식 개선이 정치(인)부터 일어나야 가능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밥그릇 싸움’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장점인 경쟁이란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투의 캠페인은 이제 멈춰야 한다. 경쟁의 규칙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건 우리가 만든 것이고 그렇기에 합의를 통해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바꾸지 못하는 것은 무능이고 바꾸지 않는 것은 잘못일 뿐이다. 한국의 정치 엘리트 집단이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새 밥그릇’ 챙기는 정치신인 학습을 계속 한다면 국가적 재앙일 뿐이다. 반성하는 게 우선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운영되는 지역민참여보도사업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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