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송림동에서 배다리와 중앙시장을 거쳐 대한서림을 지나 축현초등학교와 대동백화점을 따라 자유공원까지 이어진 고등학교 시절 등·하굣길로 나를 이끌었다. 인현동에서 생활터전을 일궜던 오랜 벗과의 십수 년 전 추억도, 신포동에서 직장 선후배와 술잔을 기울이던 날들의 기억도 새삼 되새김질했다.
인연의 끈이 닿아 문화단체에 몸담게 돼 다시 머물게 된 동인천은 변하지 않은 듯 변해 있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야 마땅한 일인데, 또 변하지 않았다.
도로명으로는 ‘자유공원로’라고 부르는 학생들의 등·하굣길, 학교 세 곳이 떠나 재잘재잘 수다 소리가 줄었다. 축현초는 학생교육문화회관이 됐고, 인천여고 자리에는 문화시설과 주차장이 들어섰다.
약속의 장소였던 대한서림은 겨우 한 층만 명맥을 유지하고, 동인서점은 주인이 바뀌어 자리를 옮겼다. 인현동 전자상가의 모습도 자리를 지켜온 그 세월만큼이나 주름이 깊다. 레코드판을 틀어주던 DJ는 사라졌지만 대동학생백화점은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주변 화방이나 미술용품 판매점, 문구점들도 잘 버티고 있다. 경양식집 ‘이집트’는 사라지고, 몇몇 분식점들이 쫄면 원조 거리로서 이름값만 유지한다. 삼치골목은 그나마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방통행로가 된 도로는 인공조형물이 사람과 차량을 구분해 놓았지만 불법 주정차 차량에 경계선은 무너졌다. 그런 탓인지 미용기술을 가르치던 인천고등기술학교를 38면 규모의 주차장으로 쓰려는 계획에 따라 건물 철거 공사가 한창이다. 이 기술학교는 기록상으로는 1958년부터 폐교된 2005년까지 미용사를 키우던 곳이라 꽤 많은 사람의 흔적을 간직했을 터, 허전하고 씁쓸한 마음이 인다.
그나마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표구점에 힘을 보태려는지 액자 제작 전문점이나 공방, 목공소, 화실, 작은 미술관 등이 새롭게 둥지를 튼 모습을 위안으로 삼는다. 고개를 갸웃한 것은 홍예문까지 난 길 여기저기 ‘철학관’ 간판이 즐비하다는 점이다. 예전에도 있었지만, 이렇게 많았는지 기억은 흐릿하다.
학생들도 주민도 줄어들고 상권도 위축돼 오가는 사람마저 뜸해진 그 길. 배다리나 신포동보다 상대적으로 관심을 끌지 못하는 그 길. 홍예문에서 화평동 굴다리까지 그리고 대한서림에서 자유공원까지 ‘잊힌’ 그러나 ‘있는’ 그 길을 톺아보고자 한다.
김주희 시민기자 juhee37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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