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우(44)씨. 그는 누가 봐도 불완전한 상태다. 한쪽 팔을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 한쪽 다리도 정상이 아니다. 한쪽 귀마저 전혀 들리지 않는다. 3살 때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다. 몸 반쪽을 잃었다.
그에게 세상은 이분법이다. 남을 놀리고 괴롭히는 것을 마치 민족의 역사적 사명인 양 여기는 세상. 오대양 육대주보다 넓고 깊은 사랑으로 남을 돕고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 35년 넘게 자신을 붙잡고 있던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 남 씨가 택한 세상이다.
헌혈. 힘쓰는 일을 전혀 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눔의 방법이다. 2001년 3월 7일. 처음 피를 뽑으러 간 날이다.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헌혈의집 문을 열었다. ‘내 피도 쓸모가 있을까?’하는 두려움. 이내 자원봉사자들의 친절에 덮였다. 그날 자신이 세상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란 걸 처음 알았다.
하루하루 헌혈의집을 찾는 날이 늘면서 어느덧 111회나 됐다. 1회 평균 500㏄의 피를 뽑는데, 지금까지 남 씨가 뽑은 피의 양은 5만5천500㏄. 1.5L 페트병으로 37개 분량이다. 1인 평균 혈액량이 4천800㏄ 이니 12명 가까운 사람 몸속에 있는 혈액량과 맞먹는다.
남 씨는 일반적인 ‘전혈헌혈’을 하다 2013년부터는 일부 성분만을 분리해 채혈하는 ‘성분헌혈’을 한다. 전혈헌혈은 두 달이 지나서야 다시 할 수 있지만, 성분헌혈은 2주만 지나도 다시 할 수 있으니 나눔의 기쁨도 두 배가 됐다.
남 씨는 지난해 9월 적십자 헌혈 유공 명예장을 받았다. 헌혈을 100회 이상 한 사람에게 주는 포장이다. 이대로라면 늦어도 2020년이면 200회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단, 건강이 허락한다면 말이다.
남 씨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헌혈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헌혈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몸이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다. 전날 뷔페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어 헌혈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가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시간을 쪼개 애써 산을 오르는 이유다. 건강 말고도 산이 주는 선물은 또 있다. 한계를 극복하는 것. 위대한 가르침이다.
10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등지던 날.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들을 걱정하면서 놓지 않으려 애썼던 따뜻한 손. 남 씨는 그 온기를 오롯이 헌혈증에 담아 그가 믿는 세상에 전달하고 있다. 헌혈을 하고 받는 상품권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은 보너스다.
"행복이 뭐 별건가요? 불편한 몸으로도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게 제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라는 남재우 씨. 비록 외형적으로는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사람도 낼 수 없는 밝은 빛이 나는 사람이다. 그 불빛을 보면서 그의 가치를 생각한다.
안성=한기진 기자 sata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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