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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3일 베트남을 방문, 정상회담을 통해 52년 만에 살상무기 수출 금지조치를 전면 해제하기로 합의하면서 적대관계 유산을 완전히 청산했다. 내일(27일) 오후에는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해 원폭 피해자들을 위로할 예정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71년 만에 미국 현직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성사된 것이다.

 미국의 원폭 투하로 히로시마에서 약 14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많은 사람들이 방사성 물질에 피폭돼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다. 미국은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원폭 투하에 대한 사죄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일본 언론과 국민들은 사죄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한다. 미국 측은 이번 방문이 ‘핵무기 없는 세계’에 대한 결의를 재확인하는 한편, 무고한 희생자를 추도하고 미·일 양국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들도 약 2만 명이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측은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한국인을 포함해 모든 희생자를 기리려는 것이라고 했다지만, 우리 가슴속 응어리는 쉽게 풀어지기 어렵다.

 필자는 히로시마에는 못 가봤지만, 수년 전 나가사키(長崎)에 있는 평화공원은 가 본 적이 있다. 1945년 8월 9일 두 번째 원폭이 나가사키에 투하됐는데, 사망자가 7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공원 내에 당시의 원폭 피해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자료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온 수많은 초·중·고 학생들이 줄지어 견학하고 있었는데, "저 어린 학생들의 가슴속에 어떤 생각이 심어지게 될까"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일본은 자신들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숨기면서 엄청난 피해를 강조하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재발해서는 안 되며,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인 일본이 전후 평화 유지를 지켜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다며 평화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열중하고 있다.

미·일 간 밀월관계에 고무된 아베정부가 평화헌법마저 개정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에 미칠 파장이 적잖이 우려스럽다. 아무튼 최근의 미·일, 미·베트남 관계를 보면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된다. 하긴 오랜 역사 동안 앙숙관계에 있었던 독일·프랑스, 프랑스·영국 등도 과거의 증오심을 씻어내고 협력적 국가관계를 유지·발전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함에 따라 얻게 된 꿈에 그리던 ‘해방’은 우리에게 ‘분단’이란 또 다른 아픔의 시작이 됐고, 1950년 6월부터 3년여 동안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전쟁마저 치렀다.

 유엔의 개입 하에 휴전협정으로 전쟁은 멈췄지만, 지금도 언제 어디서 포탄이 날아들게 될지 모르는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건만, 통일은커녕 평화 정착을 위한 기초적 토대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70년이 넘도록 부모·형제를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세상이 다 변하는데 우리만 70년 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이제 우리도 변화를 추구해 보자. 언제까지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운명을 강대국의 영향 하에 수동적으로 둬야 할 것인가. 화해와 평화를 위한 이니셔티브를 발휘해 보자. 물론 남북관계를 너무 감상적 태도로 접근하면 안 된다. 특히 남북관계 증진에는 ‘핵문제’ 등의 걸림돌이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의 ‘슬기’와 ‘지혜’가 더더욱 필요하다. 신중한 자세로 남북 간 교착상태를 타개할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자.

 우리 헌법 제4조는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통일’보다 우선 ‘평화 정착’을 위한 작은 노력이라도 시도해 보자. 문제가 있으면 해법이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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