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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추진을 직접 챙기겠다고 하자 기획재정부 등 모든 정부부처가 경쟁적으로 성과연봉제를 강력 추진하고 있다. 공기업의 경우 6월 말까지, 준정부기관은 12월 말까지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할 계획이고, 향후 시중은행 등 민간부문에도 이를 확산시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성과연봉제란 연봉제의 하나로 성과에 따라 임금에 차이를 두는 임금 지급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종래 연공급제가 널리 활용돼 왔는데, 이는 기업의 임금 부담 증가, 성과 증진 저해 등의 단점이 있으므로 성과급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빈번하게 제기됐다.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성과급제에는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있다. 예컨대 단기 업적만을 추구하게 되고, 근로자의 생계비 확보가 불확실해지며, 직장 내의 화합·협력관계가 약화되고, 부하 육성을 소홀히 하게 되며, 실패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점 등이다.

 임금체계는 통상 연공급·직무급·직능급·성과급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연공급·직무급·직능급에도 ‘성과급적 요소’가 감안돼 있다. 왜냐하면 연공급이 ‘속인적 요소(연령·근속·학력 등)’를, 직무급이 ‘직무의 상대적 가치’를, 직능급이 ‘직능의 차이’를 각기 임금 지급의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이들 기준이 성과의 실현에 차이를 발생시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연공급·직무급·직능급은 ‘실현될’ 성과의 크기를, 성과급은 ‘실현된’ 성과의 크기를 임금 지급 기준으로 고려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연공급은 장기결제형 처우의 사고방식으로, 직무급·직능급은 중기결제형 처우의 사고방식으로, 성과급은 단기적인 활동과 단기적인 처우를 일치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단기결제형 처우의 사고방식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성과급제가 성공하려면 공정한 성과평가제도가 마련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갈등만 양산하고 기업의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매우 크다. 또한 공공부문은 성과의 측정·평가가 어려운 특성을 가지므로, 성과급제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임금은 법상 ‘근로의 대가’이지 ‘성과의 대가’가 아니므로, 과도하게 ‘성과’를 임금 지급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가령 열심히 일했음에도 성과가 저조하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기업과 직무의 특수성 등을 신중히 감안하지 않고 공정한 평가제도가 미비된 채 단기간 내 획일적으로 성과연봉제를 추진하는 것은 그 타당성과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더 큰 문제는 성과연봉제의 도입 절차와 관련해서 위법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급여규정 등 사규)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과반수노조(과반수노조가 없는 경우 근로자의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제94조 제1항 단서), 노사 합의 없이 이사회의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곳이 많다.

이에 대해 많은 노동법전문가들이 ‘불법·무효’라고 지적하고 있고, 노동계는 줄소송을 예고하면서 총파업에 나설 태세다. 정부가 패소가능성 등 법률 위험(legal risk)과 노동 현장의 파국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성과연봉제 도입에 집착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우며, 도입 후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성과급제만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인 것은 아니며, 각종의 임금체계(연공급·직무급·직능급·성과급 등)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따라서 임금체계는 각 기업과 직무의 특성을 고려해 노사 합의로 결정토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근로기준법 제4조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노사대등결정주의’ 내지 ‘노사자치주의’를 중요한 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성과연봉제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사 합의로 추진토록 하고, 정부는 더 중요한 현안업무(경제활력 증진, 양극화 해소, 미세먼지로 인한 환경문제 등)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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