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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범 아나운서
소설가 한승원은 단편소설 「목선」으로 데뷔한 이후 수많은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한 대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학창시절,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인지 그의 자녀들 중에는 문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가 많습니다. 장남과 장녀는 등단한 소설가이며, 사위는 문학평론가라고 합니다.

2007년 출간된 「채식주의자」라는 소설로 올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교수가 바로 그의 딸입니다. 부전여전(父傳女傳)입니다. 맨부커상(The Man Booker Prize)은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입니다.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공쿠르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꼽힙니다. 그래서 한국 문학의 쾌거로 불립니다. 더불어 수상작가의 10여 년 전 작품까지도 재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강 교수와 함께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이가 있습니다. 이 작품을 번역한 20대 영국인 여성 데버러 스미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은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은 스미스의 번역은 매순간 아름다움과 공포가 묘하게 섞인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극찬했습니다. 그런 만큼 그의 번역이 없었다면 맨부커상 수상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놀라운 것은 번역가 스미스는 21살에 한국어를 배우기 해서 겨우 7년 만에 최고의 영국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21살까지는 오직 모국어인 영어만 구사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한국 문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한국인을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한국과 별다른 인연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번역가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당시 영국에 한-영 번역가가 적다는 점에 착안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는 ‘어떻게 번역자가 6개월 만에 한국어를 배웠나’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문학작품을 제대로 번역한다는 것은 기계적인 해석만으로는 불가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 나라의 언어는 물론이고 문화와 관습, 환경 등에 대해서 폭넓은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BBC는 세종대왕을 언급했습니다. 세종대왕이 28개의 자모로 이뤄진 한글을 창제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덕분에 읽고 쓰는 게 쉬워졌다고도 밝혔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슬기로운 자는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칠 것이고 어리석은 자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는 문구도 인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세종대왕도 (맨부커)상을 받을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느 외국어처럼 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을 터입니다. 실제 영어권 사용자들에겐 한국어가 어려운 언어라고 합니다.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는 배울 때 드는 시간이 약 600시간 정도인 데 비해 한국어는 무려 5배나 더 긴 2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정부의 어느 교육기관에서는 한국어를 ‘배우기에 대단히 어려운 언어’로 분류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BBC에서 언급한대로 ‘읽고 쓰는’ 것을 매우 빨리 습득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한글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입증하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 주변에 언제나 있기에 그 소중함을 모르는 공기처럼 ‘한글’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새삼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한글과 우리말의 파괴 현상은 하루이틀 이야기가 아닙니다.

 언어에는 역사성과 사회성이 있기 때문에 언중의 용례에 따라 당연히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중이 이렇게 쓰니 마땅히 바꿔야 한다는 주장’ 이전에 맞춤법, 발음법 등 한국인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국어에 대한 소양교육이 먼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마침 이달에 개최되는 서울국제도서전에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참석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수상과 그의 방한을 계기로 대외적으로는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기회가,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우리글과 말을 제대로 쓰자는 운동의 시발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것은 우리가 먼저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우리말과 글을 아끼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 보고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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