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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작년 9월 출간된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을 들추다가 ‘아하!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 아닌 로켓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로켓에 관한 이야기는 인천에서 있던 엄연한 한국 최초의 사건인데 필진들이 놓쳐 버린 모양이다.

 사실 필자는 꼭 10년 전에 ‘남동구에서 쏘아 올린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로켓’이란 제목의 글을 남동구문화원에서 발간하는 한 잡지에 쓴 적이 있다. 이 글을 쓸 때는 여간만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데, 작년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책자에는 그만 빠져 있는 것이다. 아쉬움 속에 다시 한 번 로켓 이야기를 해 본다.

 오늘날도 여전히 북한은 미사일 발사로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지만, 10년 전 인천 로켓 이야기를 쓰게 된 발단은 그해(2006년) 7월 5일 새벽에 발사한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때문이었다.

‘북한은 그날 새벽 4시께부터 약 2시간 동안 동해상으로 6기의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세 번째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2호는 발사 40초 만에 공중 폭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는 미국 CNN의 보도를 보면서 그때 문득 ‘인천 로켓’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이 로켓은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인 1959년 7월 27일, 인천시 남동구 고잔동 해안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발사에 성공한 5종의 국산1단, 2단, 3단 로켓을 말한다.

 이 로켓들은 ‘005호, 006호, 007호, 067호, 556호’ 등의 번호로 불렸는데, 556호인 3단 로켓은 길이 3.17m, 지름 16.7㎝로 최대 고도 4.2㎞까지 상승해 81㎞를 비행했고, 67호인 2단 로켓은 길이 4.65m, 지름 22.9㎝로 최대 고도 9.5㎞까지 상승해 26㎞를 비행했다.

 인천발로 전국에 전해진 이 대견한 로켓에 대한 상보는 발사 다음 날인 7월 28일자 조선일보에 실려 있다. 헤드라인부터 ‘國産 로켓트 發射에 成功, 李 大統領 參觀裡 仁川서’라고 특필하고 있는데, 이날 고잔동 바닷가 발사 현장에는 무더위 속에서도 ‘이 대통령을 비롯하여 유엔군 사령관 맥그루더 대장, 김정렬 국방장관과 전 국무처원, 각 군 참모총장 등 내외 빈객과 인천시민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제2차 로켓트 발사가 성공리에 거행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10년 전 글 속에는, 지금 같으면 이런 정도 로켓이야 웬만한 공대생들 장난감쯤에 지나지 않겠지만 전쟁 후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던 당시 우리 형편에서 독자적으로 이룬 쾌거요, 자랑이 아닐 수 없다는 필자의 감회가 보인다.

아무튼 로켓 연구와 이날 발사를 주도했던 국방과학연구소 내 로켓연구소는 1961년 해체돼 연구가 중단되고 만다. 정치 변화 때문이었는지, 우리 경제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미국과의 국방정책상의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편, 이 무렵 인하공대에 설치된 병기공학과에서 국내 어느 대학보다도 먼저 로켓 연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최초 로켓인 IITO-1A와 IITO-2A가 1960년 11월 제작돼 11월 19일 오후 3시 50분 송도 앞바다에서 시험 발사에 성공한다.

 그 후 1962년 4월 인하우주과학연구회가 발족되고, 9월에 다시 송도에서 소형 실험용 로켓 4대를 시험 발사해 성공을 거둔 뒤 10월에도 2대의 로켓을 추가로 쏘아 올린다.

 인하공대는 1964년 12월까지 IITA-4MR, IITA-7CR 등의 로켓을 더 발사했다. 그러나 야심차게 로켓 연구에 뛰어들었던 인하공대의 노력도 이 시점을 뒤로해 감감해지고 만다. 모르기는 해도 역시 예산상의 문제나 정책적인 면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인천은 최초의 국산 로켓 발사지면서 대학 최초로 로켓 개발과 발사 시험을 담당했던 곳이었다. 지금은 그저 ‘지나간 사건’들이 되고 말았지만 로켓 이야기가 나오면 아쉬움 속에서도 여전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인천이 로켓을 통해 일찍부터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자랑스러운 과학도시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 막 시작된 1959년 7월 27일, ‘1957년에 소련이 첫 인공위성을 발사하면서 불붙은 미소 간의 경쟁에 당당히 끼어들어 그들처럼 우리도 로켓을 쏘아 올린다’는 엉뚱한 소문이 퍼져 우리들을 엄청난 자부심과 함께 설렘 속에 빠져들게 했던 고잔동 로켓 발사 사건. 서둘러 아침을 먹고는 길도 모르는 그 먼 고잔동을 향해 무작정 집을 나섰던 일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운영되는 지역민참여보도사업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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