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본선 대진표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간 맞대결로 짜인 가운데 두 후보 캠프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대조를 보이고 있다.

경선 내내 '이메일 스캔들'과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에게 발목이 잡혀 고전해 온 클린턴 전 장관이 후보 확정을 계기로 급속도로 세를 불려가고 있다면, 어렵사리 당을 통합하는 듯했던 트럼프는 멕시코계 판사 비난 발언의 역풍에서 좀체 헤어나오지 못한 채 코너에 몰려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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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연합뉴스 DB>>
클린턴 전 장관은 최근 가장 큰 원군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진보의 아이콘'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의 지지 선언과 샌더스 의원의 협력 약속에 이어 유명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의 지지도 확보했다.

상원의원 출신으로 1984년, 1988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던 잭슨 목사는 11일(현지시간) 시카고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한 지지를 공개로 선언했다.

잭슨 목사는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해 "미국의 도시를 재건하고 실업률을 낮추며 총기폭력을 줄일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이자 최선의 희망"이라면서 "그녀가 의료 제도를 손질하고 가난한 자와 인권을 위해 기꺼이 싸울 것을 우리는 믿는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바이든 부통령, 워런 의원, 잭슨 목사에 더해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 이들 모두 클린턴 전 장관 지원 유세에 발벗고 나설 예정이다.

당장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15일 대표적 경합주이자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 이번 대선의 핵심 승부처로 떠오른 위스콘신 주를 찾아 첫 지원유세를 한다.

아직 경선에 참여 중인 샌더스 의원도 향후 직접 지원 유세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샌더스 의원의 동참은 젊은층에 취약한 클린턴 전 장관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힐러리 클린턴<<연합뉴스 DB>>
힐러리 클린턴<<연합뉴스 DB>>

반면 트럼프는 아직 당 주요 인사들의 완전한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공화당 1인자'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널(켄터키) 상원 원내대표는 향후 본선전이 개막되면 지원 유세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연일 멕시코계 연방판사 비난 발언을 포함해 트럼프의 각종 인종차별 언급을 성토하며 태도 변화를 압박하고 있다.

더욱이 경선 경쟁자 가운데도 일찌감치 지지를 선언한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와 신경외과 의사 출신 벤 카슨 이외에는 대부분 소극적 지지 또는 방관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다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전 대통령과 경선에서 탈락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등 부시 일가는 여전히 트럼프 지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08년 대선 후보를 지낸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은 트럼프를 지지하지만, 지원유세에는 직접 나서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2년 대선후보였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트럼프가 인종주의와 편견, 여성혐오를 사회 저변에 확산시킬 것"이라고 비판하며 아예 자유당 게리 존슨 후보에 대한 지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공화당 전략가인 존 피헤리는 의회전문지 더 힐(The Hill)에 이런 상황에 대해 "진짜로 큰 문제"라고 우려하면서 "비(非)정치인인 트럼프가 그동안 많은 사람에게 어필해 왔지만, 근본적으로 선거에서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메시지 없이는 '대리인 지원유세 작전'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서 트럼프의 대리인은 크리스티 주지사, 제프 세션스(앨라배마) 상원의원, 장녀 이방카를 비롯한 가족들 정도 뿐"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로서는 그동안 공화당의 자금줄 역할을 해 온 인사들의 이탈도 적잖은 고민거리다.

도널드 트럼프<<연합뉴스 DB>>
도널드 트럼프<<연합뉴스 DB>>

대표적인 공화당 골수지지자 석유재벌 찰스(80)·데이비드(76) 코흐 형제는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 후보 선출을 위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 자금을 후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메그 휘트먼(59·여)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를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나에 비유하면서 아예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한 지지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런 기류는 여론조사 지지율로도 나타나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이 상승 흐름을 탄 반면 트럼프는 하락세를 보이는 형국이다.

폭스뉴스의 최근 여론조사(6월5∼8일·1천4명)에서 클린턴 전 장관은 42%를 기록해 39%에 그친 트럼프를 3%포인트 앞섰다. 지난달 중순 조사와 비교할 때 클린턴 전 장관은 변동이 없었으나 트럼프는 지난달 45%에서 6%포인트나 빠졌다.

특히 전날 공개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6∼10일·1천276명)에서는 클린턴 전 장관이 46%, 트럼프가 35%를 각각 기록해 지지율 격차가 무려 11%포인트에 달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번 여론조사 기간 중반까지만 해도 평균 8%포인트 우세를 보였으나, 지난 7일 후보 확정 효과가 반영되면서 급상승세를 탄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클린턴 전 장관과 트럼프는 이날도 상대에 대한 공세 수위를 바짝 높였다.

트럼프는 플로리다 주 탬파와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유세에서 "우리는 '사기꾼 정치인'(힐러리)에 맞서 승리해야 한다"면서 "힐러리가 내 기질을 문제 삼는데 본인의 기질(성격)은 몹시 나쁘다. 비밀경호국(SS) 요원도 그녀가 '엉망이고 불안정하며 대통령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클린턴 전 장관 뿐 아니라 롬니 전 주지사에 대해서도 "어제 CNN 방송에 나와 나를 비판했는데 불쌍하기 그지없다. 여성 혐오자가 뭔지도 모르고 나를 비판한다"고 반격했고, 자신을 비판하는 당 지도부를 향해서는 "민주당이 우리보다 훨씬 단합돼 있다. 우리도 단합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클린턴 전 장관 측은 소송이 진행 중인 '트럼프대학' 홍보 영상을 패러디한 동영상을 공개하며 사기 의혹을 부각시켰다.

동영상을 보면 내레이터가 3단계 등록 절차 등에 대해 설명하는데 "첫째 서류 등록을 하고 둘째 당신이 가진 엄청난 돈을 내면 된다"면서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없다. 참 쉽다"고 꼬집는다.

동영상은 트럼프의 사업적 성공을 '칭찬'하면서 "당신이 어렵게 돈 번을 억만장자(트럼프)에게 줄 수 있는 평생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로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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