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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옥 시인
자투리 시간이 나면 강화를 자주 가는 편이다. 그곳에 가면 바다도 있고, 공기도 맑고, 우리나라 시련의 역사유물도 있고, 잠시 쉬었다 올 수 있어 좋다. 고려산(高麗山)은 고려가 강화로 천도하면서 송도의 고려산 이름을 따서 현재까지 그렇게 불리고 있다.

 인천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위치하고 있는 이 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진달래 군락지로서 봄이면 진달래꽃 축제가 열린다. 이곳에 진달래꽃이 많은 이유가 촉(蜀)나라 왕 두우의 피맺힌 귀촉(歸蜀)의 절규가 붉은 진달래꽃으로 피어났다는 전설처럼 개성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고려 고종의 한이 서린 것 때문인가 실없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이곳에 있는 백련사는 고구려 장수왕 4년에 고려산을 답사하던 천축조사가 이 산 꼭대기에 있는 오련지에 오색연화가 찬란히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오색 연꽃을 꺾어 공중에 날려 그 꽃잎이 떨어진 곳마다 절을 세웠는데 이곳은 그 중 백련이 떨어진 곳이라 백련사(白蓮寺)라 했다고 한다. 이 절에는 1989년 보물 제994호로 지정된 고려 후기에 유행한 단아하고 세련된 양식으로 만들어진 철아미타불좌상이 있다.

 백련사 앞뜰에는 한때 화려하게 피었을 목단꽃이 지고 씨를 맺고 있었다. 향기가 나지 않아 벌과 나비가 모여들지 않는다는 목단꽃, 선덕여왕이 자신을 목단으로 비유했다고 한다. "목단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연꽃은 꽃 중에 군자라고 할 수 있다"라고 송(宋)나라 때의 유학자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說)에서 말했다던가. 거의 허물어질 듯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서 있는 작은 절을 보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그야말로 무상이 아닌가. 하기야 제행무상이니 지금 내가 이 세상에 있고 오래된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1231년 고려를 침공한 이래 고려가 개경에서 강화로 수도를 옮기고 본격 항쟁을 지속한 1259년까지 28년간 그러고도 10년 후에야 개경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 긴 세월 강화가 고려의 수도였으니 고려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3층 이상의 몸돌과 5층의 지붕돌, 머리장식 부분 등이 사라진 상태에서 보수돼 남아 있는 고려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오층석탑, 온수리에 있는 삼랑성,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 건물로 사용되던 고려궁지,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 강화산성, 갑곶돈대, 해안 방어를 위해 적북돈대로부터 초지진까지 23㎞에 걸쳐 쌓은 강화외성, 택지돈대, 분오리돈대, 삼암돈대 등 항몽전쟁으로 인한 피맺힌 역사가 남아 있는 강화는 전쟁을 아프게 견디어 낸 고려 역사의 현장이다.

 이 시절 이규보는 동명왕편, 팔만대장경의 기원문인 대장경각판 등으로 국난을 타개하려 했던 지식인이다. 그런 그가 무신정권에 적극 협력한 것은 사실이다. 무신정권이 오래 갈 것이라 생각했을까 아니면 개인의 영화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무신의 세력에 눌려 큰소리 한 번 내지 못한 고종의 묘(홍능)는 고려산 중턱에 있는데(요즘에 좀 돌보는 듯) 전등사 가는 길인 진강산에 자리잡고 있는 이규보의 묘소는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돼 홍능보다 더 잘 보존·관리되고 있다. 1241년(고종 28) 74세에 강화도에서 별세, 문순(文順)의 시호 받았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이런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서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독립운동을 했던 큰오빠에게서 들은 독립군가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군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삼천만이 이런 정신으로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를 되찾았고 자주독립국가로 70년을 지내왔다. 고려의 항몽전쟁 당시 고향을 떠나온 병졸들 사이에서도 이런 비슷한 노래 혹은 고향을 그리는 노래가 있었을 것이다. 들의 풀꽃처럼 이름도 없이 간 그 많은 병사들의 원한은 또 얼마나 깊을까. 내가 지금 여기서 고려를 보듯이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게 될 때 좀은 슬프지 않는 국가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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