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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2월에 이어 6월 중순에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다녀왔다. 2월 여행에서는 고려 사람들을 만나 함께 어울린 우리 동포와의 교류로 의미가 있었고, 6월 여행은 역사의 흔적과 역사를 이룬 과거 사람들을 현재로 초빙해 일상생활에서 어울리는 현지인들에게 감명을 받은 시간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 민족과 연결된 역사가 유구한 연해주 지역의 중심도시다. 150여 년 전인 구한말 연해주로 이주한 우리 민족이 부락을 형성해 터전을 이뤘던 현재 시가지 중심지인 구한촌과 쫓겨나 다시 세운 신한촌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면서 집결한 곳도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바로 앞 중앙광장이다.

 그 중앙광장에서 가까운 곳에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이 있다. 극동지역의 탐험가이면서 인류학자이고 지리학자였던 Arsenyev Vladimir Klavdievich의 이름을 따 1890년에 개관한 역사 깊은 박물관이다. 이곳이 한국인 관광객에게 회자되는 이유가 있다. 박물관 입구에 발해 유물로 추정되는 석상이 전시돼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우리 고대사의 영광이었던 발해 유물이 전시돼 있다. 3층에는 한인 독립운동 관련 사료와 연해주에 살고 있던 한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곳 고고유물관의 전시물과 출토지 지도를 보면 우리 고대사의 한 영역이 전시돼 있는 장면과 만나는 감동을 체험한다. 그 중에서도 세형청동검은 압록강 이남에서만 출토됐던 터라 주류사학에서 우리 역사의 지형도를 한반도로 묶어 버렸다고 하는데, 연해주 지역에서 출토된 세형청동검을 보면서 광활한 대륙을 누볐던 선조의 호기에 자긍심이 생긴다.

 아르세니예프는 1930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생을 마친 인물이다. 그는 평생 동안 연해주를 탐험하면서 많은 자료를 남겼다. 덕분에 우리의 고대 역사와 재회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물받았다. 장황하게 아르세니예프를 소개한 이유가 있다. 잠시 머물렀던 방문객인 나는 그를 추모하고 사랑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도보로 20분쯤 되는 곳에 아르세니예프의 생가가 있다. 평일 저녁에 이곳에서 아르세니예프의 생애와 관련된 연극 공연을 한다. 막심 고르키 극단 소속 배우, 100년이 넘은 삘라르모니아홀 소속 오케스트라, 태평양함대 극단 소속 배우들이 출연하는 내실 있는 공연이라고 한다. 그의 생가 거실에 20여 명 정도의 관객이 앉았다. 생가 건물의 한 층을 매표소, 전시공간, 공연장, 배우들 대기실 겸 연습실 등으로 나눠 공연 장소가 정말 좁았다. 간이의자 6개씩 3줄을 붙이고 벽과 무대 정면 벽난로 옆에도 의자를 놓았다.

 관객의 대다수는 동네 주민 같았다. 곱게 차려입고 온 그분들은 아름다워 보였고 생활 속에서 문화를 즐기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불경기 여파로 루블화는 폭락하고 물가는 살인적이라 서민들의 삶이 힘들다고 들었다. 티켓 값 600루블이면 서민들 주머니 사정으로는 가볍지 않은 액수라고 한다. 문화를 즐기는 것에는 공공의 개념이 있어서 이름 있는 발레 공연 티켓 값이 채 2천 원도 안 되는 좌석표도 있다 하는데 여기는 일괄 600루블이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만 원 조금 더 되는 액수다.

 말 통하지 않는 동양인이 공연을 보러 온 경우가 없었나 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돼 어색해진 나는 만국공통어인 미소로 인사를 대신 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관람하는 관객도 진지했다. 극 속으로 몰입한 배우와 관객들을 바로 앞에서 옆에서 보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러시아어를 몰라도 연기하는 배우의 열정이 느껴졌고,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서 배우는 관객과 눈을 맞췄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말 통하지 않는 동양인 모녀를 환대해 준 배우와 관계자분들이 고마웠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내 나라를 빛내 준 인물을 추모하는 그들의 삶이 돋보였다.

 시내 곳곳의 기념 동상 앞에는 항상 싱싱한 생화가 놓여 있었다. 유명 작가의 이름을 딴 극장도, 어린이 전용 인형극장도, 발레 공연장도 여러 곳이다. 미술관과 박물관, 기념관도 블라디보스토크 인구 60만 명에 비하면 우리보다 훨씬 많다. 존경하고 기념할 만한 인물이 많은 사회는 경제가 어려워도 덜 팍팍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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