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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범 아나운서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를 일컬어서 판소리 다섯 마당이라고 합니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북치는 사람)가 음악적으로 이야기를 엮어가며 풀어가는 장르인데 노래와 아니리, 너름새(몸짓), 고수의 추임새 등으로 구성됩니다. 구전으로 전해온 소중한 우리 민족 문화의 자산으로 인정받아 2003년에 유네스코 세계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 ‘흥보가’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한글 소설 ‘흥부전’ 덕에 내용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판소리 ‘흥보가’ 중에는 놀부의 악행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호박에 말뚝 박고, 길 가는 사람 재워줄 듯하다가 해 지고나면 내쫓기, 불난 집에 부채질. 글 쓰는데 옆 쑤시고, 책 읽는데 꽹과리질. 웃는 아이 꼬집고, 잠자는데 ‘불이야!’ 소리치기. 노인 수염 잡아채고, 거지 보면 쪽박 깨고."

 이 뿐이 아닙니다. 원 가사에 보면 겁탈, 모함, 노약자 및 장애인 폭행, 공무 집행 방해, 아동 학대 등 중한 범죄 행위도 서슴지 않았더군요. 그런데 얼마 전에 보도된 내용 중에 놀부의 못된 짓과 묘하게 닮아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직장 내 집단 따돌림’에 관한 르포기사였습니다. 사소한 일로 트집 잡기, 업무 성과 가로채기, 나쁜 소문 퍼뜨리기, 부적절하게 의심하거나 누명 씌우기, 모욕감을 주는 언행, 힘든 업무 몰아주기, 필수 정보 공유하지 않기,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 주지 않기, 일하거나 휴식하는 모습 감시하기 등등.

 놀부의 악행 못지않습니다. 직장 내 집단 따돌림이 심각한 모양입니다. 작년에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직장인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까, 무려 10명 중 6명이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직장 내 집단 따돌림의 특징은 학교 폭력보다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점, 그리고 권한이나 힘을 이용해 수직적으로 저질러진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처음에는 한두 사람으로 시작하게 되지만 점점 가해자가 늘어나면서 소위 ‘직장 왕따’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진단합니다. ‘차별과 괴롭힘을 방관하는 조직문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한 가해자의 기질’, ‘경쟁이 심한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말입니다.

 직장 내 집단 괴롭힘은 피해자에게 불면증, 무기력증, 대인기피증, 우울증과 같은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주게 되는데 실제로 직장 내 집단 괴롭힘 탓에 스트레스를 받아 병원을 찾는 환자가 최근 몇 년 사이에 20% 이상 늘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 내 집단 괴롭힘은 피해자에게 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적지 않은 손실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직장 내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미흡한 것이 현실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직장 괴롭힘을 예방하려면, 직장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관심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얼마 전에 모 기업에서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그 회사는 플라스틱 사출산업에서 원재료와 사출기를 제외한 모든 아이템을 제조 판매하고 있는데, 내수 및 해외 시장 점유율 1위에 빛나는 견실한 업체였습니다.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작년 총 매출은 약 8천억 원가량이었다고 합니다.

 의뢰받은 강연 주제는 ‘소통을 통해 변화와 혁신된 조직’이었습니다. 자체적으로 진단한 문제점은, 조직이 점점 커지면서 계열사 상호 간, 회사 내 여러 부서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빌 게이츠는 "미래 기업의 성패는 얼마나 잘 소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영진이 조직 내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모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아울러 전문가의 특강까지 요청하는 열정이라면 ‘미래가 밝은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한 소통의 문화가 정착되면 직원 상호 간에 존중의 마음이 생겨서, 앞서 언급한 직장 내 따돌림 같은 것은 발붙일 틈이 없을 것입니다. 소통, 조직과 개인을 살리는 최선의 명약입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소속된 조직의 소통지수는 어떠한지 평가해보고 개선점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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