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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의 KBS 보도 개입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전 수석과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통화 내용이 공개된 것이다. 이 전 수석은 파문이 커지자 "제 불찰과 부덕 탓"이라고 했다가 이젠 "홍보수석으로서의 본연의 임무 수행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과 새누리당도 비슷한 입장을 내보였다. 또한 녹취록에 ‘대통령’이라는 주어가 없다는 주장, 보도국장에게 ‘읍소’를 한 것이지 ‘외압’을 가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유신시대의 언론관’이라고 지적하면서 "‘본연의 임무 수행’이라면 언론 통제가 상시적으로 이뤄진다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어쨌거나 이런 공방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씁쓸하다. 지난 4월에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16년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70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31위로 최고점을 찍었으나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 69위로 추락했고 또다시 최하위 기록을 갱신해 퇴보했다. 언론 자유의 수준이 곧 민주주의 발전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낯 뜨거운 일이다.

 이 전 수석에게 형사책임을 묻게 될 지는 검찰과 법원의 태도에 달려있지만, 언론 자유 침해의 죄질(罪質)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헌법 제21조에 의해 보장되는 ‘언론의 자유’는 사유(思惟)의 자유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되고, 특히 민주주의를 실현함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자유이기 때문이다.

형벌에 의해 보호되는 법익을 ‘보호법익(保護法益)’이라 하는데(가령, 살인죄의 보호법익은 ‘사람의 생명’, 절도죄의 보호법익은 ‘재물에 대한 소유권’이다), 언론자유침해죄는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라는 매우 중대한 근본가치를 보호법익으로 한다.

그렇다면 그 형량을 살인죄의 형량(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준할 만큼 또는 더 높게 정하더라도 지나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방송법은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해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규정(제4조 제2항)을 위반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제105조).

이는 절도죄의 형량(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보다도 훨씬 낮은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 말살과 민주주의 근간 훼손이라는 중대범죄(헌법 위반 사범)의 형량이 소매치기 등 잡범(雜犯)의 형량보다 현저히 낮다면 이를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언론자유침해죄(방송법 제105조)와 절도죄(형법 제329조)에 있어서는 징역형과 벌금형이 선택적으로 규정돼 있는데, 징역의 기간(2년, 6년)과 벌금의 액수(3천만 원, 1천만 원)가 상호 균형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법률 규정들을 살펴보면, 죄책의 크기와 형량의 크기가 불균형적인 사례는 이 밖에도 다수 있다. 침해되는 보호법익에 비해 너무 중한 형을 정한 경우도 있고, 너무 약한 형을 정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법률 간에 또는 같은 법률 안에서도 형벌의 균형이 맞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동종·유사범죄 간에 형량이 들쭉날쭉한 경우도 있다. 과태료 등 행정질서벌로 정해도 좋을 사안을 징역·벌금 등 행정형벌로 정해 전과자를 양산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들은 법을 만들 때 형량을 균형에 맞게 정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편, 최근 보도된 ‘황제 노역’의 사례는 형벌 집행상의 형평을 잃은 경우다. 거액의 탈세를 이유로 대법원에서 벌금 40억 원이 확정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와 처남 이창석 씨가 벌금을 미납해 노역장에 유치됐는데, 1일 환산 금액이 4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노역 일당이 통상 10만 원 수준인 일반 형사사범에 비해 너무 큰 특혜를 준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법(司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죄책의 균형성과 집행의 형평성이 국민의 정의 관념에 부합되게 이뤄져야 한다. 국민이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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