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시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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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시 중헌디
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16.07.12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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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40여 년간 글을 써 온 노작가 현기영 선생님이 산문집을 내셨다. 주요 일간지마다 선생님의 인터뷰 기사가 실리고 새로 출간한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의 내용을 발췌한 글이 사람들에게 회자됐다.

 ‘몸은 늙어가도 심장은 늙지 않는다.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는 문구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했다.

 노년은 완숙돼 익은 나이라 모든 면에서 존경할 만한 성품으로 우러름을 받는 인품의 최고봉을 이루는 때인가? 다는 아닌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다. 탐욕스러운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노련해지고 오만한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후안무치해진다. 젊은 날의 상처는 더욱 예민한 치부로 남아, 겹겹의 가시울타리를 두른 채 윤색되고 포장된다. 연륜을 무기 삼아 삿되게 목청을 높이고, 권위를 지키려고 옹졸하고 편협해진다. 자신을 비우고 성찰하지 못하는 노년은 추하고 고독하다."

 인터뷰 기사의 내용만큼 잘 익어가는 노년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조심해야 할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세월이 흐른다고 다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지 싶다.

 조금씩 익어가는 나이라고 곱게 표현하고 싶은 나도 노경(老境)이 젊음보다 더 가깝다. 내 앞을 가시는 분들에게도 나와 보조를 맞추는 연배에게도 뒤를 따라 오는 젊은 청춘들에게도 차라리 무익무해의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이 노욕으로 추한 노년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노년의 욕심을 양손에 움켜 쥔 탐욕과 오만과 후안무치와 삿된 목청과 옹졸과 편협으로 일그러진 노년을 보고 싶지 않다. 75년을 살아오시면서 숱하게 경험한 인생의 절기를 잘 거두어 온 현기영 작가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노경(老境)의 인본을 찾아 갈 수 있도록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줄 길 안내서를 세상에 펴내신 셈이다.

 버리는 기쁨, 포기하는 기쁨, 베푸는 기쁨, 자연을 즐기는 기쁨은 노년만이 누리는 여유이면서 특권이라 하셨다. 눈시울도 처지고 입 꼬리도 처지고 우울하고 무뚝뚝하고 화 나 보이는 얼굴을 인정하고 그 속에 새롭게 발견한 기쁨을 홀대하지 말고 보듬어 보자는 말을 새겨들었다.

 하는 일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현기영 선생님의 산문집이 나올 무렵에 70대에 접어든 분과 업무상 만날 일이 있었다. 지역 유지쯤 되시는 그분은 재력으로도 명함 내밀 일에도 주변의 환대를 받는 위치다. 내 평판을 누구에게 물어봐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훌륭한 지 물어봐라,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는 본인의 명성을 자랑스러워했다. 객관적인 명성이 그분이 생각하는 자부심만큼 손색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너 번의 회람 이후 또 만나는 자리가 유쾌하지 않았다.

 고급의 접대를 해 줄 사람과 막 대하면서 이득을 취할 사람과의 구분은 그 분의 연륜에 얼룩이 될 것 같았다. 뜻대로 원한 바를 취하지 못하면 성마른 화를 내고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며 끝없이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과 대접 받는 이야기를 나열했다.

 전화 통화도 약속도 상대방 사정은 고려하지 않았다. 내 동료가 편해서 가식 없는 본래의 모습이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결국에는 내 동료에게서 괴팍하고 수전노에 명성만 쫓는 고약한 노인네 소리를 들었다.

 그분보다 연륜이 짧아서 그분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솔이 있었다면 용서를 구할 일이다. 분명한 것은 향기롭게 익어가는 (老境)노경의 경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곡성’ 영화에 나온 대사 중에서 ‘뭐시 중헌디, 뭐시 중헌지도 모르면서’가 유행어다. 아등바등 살기 바빠 무엇이 중한지 모르고 살았다. 알고도 슬그머니 떠밀어냈을 수도 있다. 내려놓아 짐 가벼워진 노년에 무엇이 중한지는 알고 사는 노년기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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