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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행정학박사
로엠메르스의 ‘어린왕자-두 번째 이야기’에서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착한 아들을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빠가 되는 거고, 좋은 아빠를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들이 되어야 해. 간단히 말해서 세상을 바꾸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자기 자신을 바꾸는 거야."

니체도 같은 말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허물을 벗지 않는 뱀은 결국 죽는다. 인간도 이와 같다. 낡은 사고의 허물 속에 언제까지나 갇혀 있으면, 성장은 고사하고 안쪽부터 썩기 시작해 끝내 죽고 만다. 늘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사고의 신진대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세상과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지만, 실제로 남는 것은 갈등과 분열뿐일 겁니다. 그래서 로엠메르스나 니체가 지혜를 알려주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네 자신을 바꾸면 된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나의 무엇을 바꿔야 할까가 문제입니다. 허물을 벗고는 싶은데, 나의 어떤 허물을 벗어야 할까요? 니체의 말처럼 사고의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물이나 상황을 가능하면 낙관적으로 해석해내는 태도가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이란 어떤 일이 나에게 생기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그 상황을 해석해 내느냐에 따라 결정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윈스턴 처칠은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 속에서 어려움만을 찾아내지만,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 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사 일을 수십 년 해온 사람이 모임에서 "내가 30년 가까이 사회복지 이야기를 했는데도 이 사회는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을 찾아가서 말씀드리자 신부님은 이렇게 조언해 주셨다고 해요.

"당신이 뭔데 이 세상을 바꾸려고 합니까? 나는 육십 년도 넘게 말했는데도, 그리고 예수님은 2천 년 동안이나 이야기했는데도 사회는 여전히 이 모양 아닙니까? 당신이 뭔데 당신의 바람대로 세상이 바뀌어야 합니까?"라고요.

이것을 ‘메시아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자신이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메시아가 된 것처럼 이상적인 세상을 그려놓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비난하며 분노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메시아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은 자기 자신을 무척이나 힘들게 하고,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까지도 고통을 안겨주게 될 겁니다.

에디슨은 2천여 건 이상의 발명특허를 가진 천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릴 적에는 저능아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학교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지혜로운 어머니가 해주시는 위로 때문에 늘 용기를 잃지 않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의 에디슨에게는 귀머거리라는 엄청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측은하게 여기는 것을 알고는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할 일은 제가 귀머거리가 됐기 때문에 연구할 때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참 대단한 낙관론자이지요? 내게 다가온 엄청난 역경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성장의 계기로 삼는 태도, 즉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태도가 에디슨의 위대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낙관주의자는 장미에서 가시가 아니라 꽃을 보지만, 비관주의자는 꽃은 보지 않고 가시만 바라본다’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꽃을 보지만 무엇을 보느냐가 이렇게도 삶을 갈라 놓는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결국 나를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하는 것은 꽃의 존재가 아니라, 그 꽃에서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누구나 행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메시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어린왕자의 조언처럼 자신을 바꿔내는 것, 즉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너그러움으로 세상과 호흡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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