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층 위한 발명품 제작 ‘우리가 있다’
상태바
소외층 위한 발명품 제작 ‘우리가 있다’
삼포세대 기술로 희망 캐는 열혈청년들… 인하대 ‘레트로기어’팀
  • 김종국 기자
  • 승인 2016.07.20
  • 3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啐啄同時(줄탁동시)’, 알 속의 병아리가 달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 껍질 안에서 쫄 때 어미 닭이 밖에서 동시에 쪼아 이를 깨뜨린다는 의미다.

 취업난에 경제적 부담이 더해져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 세대’에 속한 요즘 청년들이 ‘어미 닭’인 국가와 지방정부, 기업 등 ‘기성세대’에게 신신당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올해 상반기 한국 청년실업률은 10%가 넘어 청년 10명 중 1명이 실업자인 상태다. 하지만 돈 벌 목적으로 일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모두 취업자 통계에 포함되는 실태를 볼 때 실제 실업률은 30%에 이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처럼 ‘어미 닭’이 ‘고용 절벽’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삶의 희망을 개척하는 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사상 최대 청년실업’이라는 시대의 질곡에 굴하지 않고 발명과 창업에 도전하며 새로운 기술강국을 준비하는 ‘20대들’의 이야기를 담아 봤다.

3-1.jpg
발명대회에 참가한 인하대 ‘레트로기어’ 팀원들이 작업 진행 도중 카메라 앞에서 잠깐의 여유를 보이고 있다. <사진=레트로기어팀 제공>

# 20대 청춘, 기술을 통한 사회적 문제 해결을 실천하다

스물네 살 대학생 권헌도(남구 용현동)씨는 인천지식재산센터의 ‘IP 창조 Zone 창작 및 특허 연구실’ 1기 수료생이다. 인천지식재산센터는 그와 동료들이 지난해 특허를 출원한 ‘현악기 운지 보조 장치’를 ‘창업 우수 사례’로 꼽았다.

인하대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전공하면서 산업공학을 부전공하고 있는 이 ‘열혈’ 대학생은 현재까지 무려 5건의 발명 특허를 출원했다. ‘양방향 착용 가능 신발’, ‘냉각효과를 지닌 헤드폰’, ‘자동안마 장치’, ‘수납형 멀티탭’, ‘현악기 운지 보조 장치’가 그것이다.

▲ ‘레트로기어’ 권헌도 학생이 동료들과 함께 특허 출원한 현악기 운지 보조 장치를 장착한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있다.
이 중 현악기 운지 보조 장치는 사연이 남다르다. 앞의 4가지 발명품이 권 씨 혼자의 힘으로 창조된 것이라면 마지막 것은 ‘기술을 통한 사회적 문제 해결’을 모토로 내걸고 결성된 인하대 ‘레트로기어(RetroGear)’팀의 작품이다. 팀의 리더이면서 현악기를 오랫동안 다뤄 왔던 이기영(28·공간정보학)씨가 착안한 이 제품은 팔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거나 팔의 일부 또는 전체가 소실돼 현악기 연주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공동 개발됐다.

이 씨는 "이 제품이 갖는 의의나 기대효과는 단순히 장애인·비장애인을 위한 음악 연주 보조장치라는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음악의 향유를 통한 신체적·심리적 해방, 자아의 건강한 표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라는 데 발명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인하대 레트로기어팀은 이 작품 등으로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최한 ‘2015 창조경제 IoT(사물인터넷) 해커톤 시즌2’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쥐었으며, ‘2016 인하대 공학설계 동아리 프로젝트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들을 통해 지난해 상반기에 결성된 팀에는 현재 김지영(컴퓨터정보공학)·이철(조선해양공학)·변진슬(유기응용재료공학)씨가 합류해 각종 발명대회를 휩쓸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 갈림길마다 사람들과 사회를 널리 이롭게 하는 길 택해

사실 ‘레트로기어(역행 기어)’란 팀명이 암시하듯이 이들은 우리 사회의 주류 및 다수의 가치관과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정행 기어’의 역할과 달리 소외된 이웃들의 위한 ‘공학적 실천’을 위해 결성된 팀이다.

이들은 지금도 경기도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나 경인지역에 있는 재활원, 복지관 등을 수시로 드나들며 사회적 취약계층의 실제 요구사항을 파악해 이를 바탕으로 한 제품 개발 및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대학 입학 당시만 하더라도 권 씨는 고등학교 때 은사인 김승철 선생님의 영향으로 영어 교육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우연히 학창시절 추억의 앨범을 펼쳐 본 것이 대오각성(大悟覺醒)의 계기가 됐다. 초·중·고교 시절 앨범에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가 참가했던 각종 발명대회에서의 기념사진과 거기서 받은 상장들이 빼곡히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권 씨는 "교직을 통해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유익한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늘 가슴속에 있었다"며 "앨범을 보고 난 후 공학을 보다 전문적으로 배워서 기술로써 사람들과 사회를 널리 이롭게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말했다. 산업공학이야말로 그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 가치관, 사회적 요구를 한꺼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을 지녔다는 게 권 씨의 설명이다.

3-2.jpg
컴퓨터와 연결해 실험하고 있는 현악기 운지 보조 장치.

# 청년의 삶이 ‘삶은 달걀’ 같기를

권 씨를 비롯해 레트로기어 팀원들은 외부의 환경 변화에 따라 쉽사리 취약해질 수 있는 청년들의 삶이 의식적 단련을 통해 강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를 날달걀과 삶은 달걀에 비유하는 그는 "날달걀은 껍질이 깨지면 내용물이 흘러나오고, 삶은 달걀처럼 스스로 서 있을 수도 없다"며 "하지만 삶은 달걀은 껍질이 깨져도 내용물이 새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달걀 외부에 열에너지를 가해 일종의 단련을 거침으로써 그 물성(物性)이 변해 견고해지고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병아리(청년)들이 각자 나름대로 실업난이라는 달걀 껍질을 깨부수고 사회로 진출하고자 힘쓰고 있다"며 "그러나 어미 닭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지자체, 학교, 관련 기관들도 제도적 개선과 산학 연계, 금전적·물리적 지원을 통해 이제 행동으로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이 처한 이 같은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까지 배려하려는 레트로기어팀의 ‘역행 기어’ 역할이 이 순간 더욱 빛나는 이유다.


기호일보, KIHOILBO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