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사회부장.jpg
▲ 박정환 사회부장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우리는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며 국가에 헌신하고 국민에게 봉사한다.’

 ‘공무원 헌장’의 일부 내용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공무원을 신뢰하고 따른다. 아니, 그러고 싶은 것이 우리네의 심정이다. 그 밑바탕에는 믿음이 깔려 있다. 공무원의 자격이라면 적어도 그 헌장에 새겨진 가치와 신념을 지킬 것이라는 신조에서다. 우리가 기꺼이 세금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 공무원도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니다.

 그저 애꿎은 세금이나 축내는 월급쟁이요, 허겁지겁 자기의 배나 불리는 장사치일 뿐이다. 공무원 헌장 역시 쓰레기통에 쑤셔 박아야 할 종잇장일 테고, 헌장 속 글귀들은 쓸데없는 잉크의 끄적거림에 불과하다. 문제는 공무원을 향한 기대가 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사람을 키워야 하는 교육계에서 말이다.

 최근 인천시교육청 고위직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도화선은 이청연 교육감의 비선 라인 인물들과의 검은 거래였다. 뇌관은 배움의 전당인 학교를 ‘도량(道場)’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의 부동산(不動産)으로 보는 학교법인과 건설업자의 암약이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토악질이 날 정도다.

 인천시 남동구 만수동 문일여고와 한국문화콘텐츠고를 둔 문성학원의 학교 이전 및 재배치사업은 8년 전부터 시작됐다. 2008년 7월 3일 학교위치변경(이전)승인이 났고, 이듬해 9월 14일 도시관리계획 결정고시가 떨어졌다. 지금까지 적잖은 시행사들이 덤벼들었다. 학교 이전·재배치 터(2만7천572㎡)에 아파트를 건설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깨지고 말았다. 한화건설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3월 31일 남동구 논현동에 한국문화콘텐츠고를 옮길 자리(1만2천40㎡)를 마련했다. 이 회사는 문성학원 측으로부터 토지대금 123억 원을 아직도 못 받았다. 토지 매매계약이 엎어지고 잦혀지면서 문성학원 측의 채권·채무관계는 대추나무 연 걸리듯 했다.

 얽히고설킨 문성학원의 학교 이전 및 재배치 사업은 꾀부리는 업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더군다나 도시철도 2호선이 지나가는 역세권인지라 배를 불릴 수 있던 터였다. 더 많이 더 높이 아파트를 우겨 넣을 작정에 학습환경보호제(학교 일조권)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구린내 나는 먹이사슬 속으로 파고든 것이 고위직 공무원이었다. 학교위치변경 허가와 교육용 재산 허가를 무기로 모리배의 판에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시교육청 고위직은 20, 30년지기를 시행사 대표에게 소개했다. 순조로운 사업 진행을 약속하며 20년지기 무뢰한에게 생활비와 승용차 지원을, 30년지기 건설업체 간부에게는 학교 시공권을 시행사에서 뜯어냈다.

 고위직은 이청연 교육감을 들먹이면서 건설사 간부로부터 3억 원을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으로 돌려가며 꿨다. 물론 이 거액은 고위직의 눈치를 봐야만 했던 시행사 대표가 대신 갚기로 한 돈이었다.

 이 돈의 실체 또한 의혹투성이다. 지금까지 녹취록에서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2014년 교육감 선거비용으로 빌린 돈을 갚기 위한 ‘검은 자금’일 개연성이 높다. 곧 성사될 것 같았던 학교 이전·재배치 사업은 2015년 11월 30일 문성학원 측의 토지 매매계약 해지로 틀어졌다. 바뀐 업무대행사(시행사)는 지역주택조합 방식으로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다. 일을 추진했던 시행사는 문성학원 측에 계약해제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철석같이 믿었던 고위직에 따졌다. 그러나 고위직은 ‘배째라’는 식이었고, 이 일이 새 나가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 할 것’이라며 겁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고위직의 일그러진 행동은 고스란히 선의의 3자인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조합원들의 몫으로 떨어질 수 있다. 조합원은 새 시행사에 청약금과 조합 가입비 1천300만 원을 이미 낸 상태다. 공무원 헌장에 적힌 ‘헌신’의 대상인 국민을 ‘해악’으로 몰아넣었다. 이 비열한 거래는 공분을 샀고, 급기야 인천지역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철저한 수사 촉구로 이어졌다. 검은 거래 사슬에 대한 단죄를 요구하는 시민의 눈이 검찰 수사에 쏠려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