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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식보(食補)가 약보(藥補)라는 말은 잘 먹으면 그것이 건강을 위해 좋은 약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여름철 무더위에 자칫 잃기 쉬운 건강을 돕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보양식을 찾는다. 보양식이라면 단연 삼계탕이나 보신탕을 꼽을 것이다.

 여기에 단물에서 나는 장어도 높게 치는 보양 음식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장어는 값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제대로 요리를 내는 집도 드물다.

요즘에는 이 같은 전통 보양식 대신에 자기 개성대로 먹을거리를 찾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안면이 있는 한 소기업 사장은 여름철 보양식으로 콩국수를 예찬한다.

 여름 한철 스무 그릇쯤 콩국수를 들면 그해 겨울은 감기를 면할 수 있다는 평론가 김양수(金良洙) 선생도 생각난다. 역사자료관 박사 한 사람은 이렇다 할 보양식을 찾지는 않는 인사로 알고 있다.

그도 콩국수를 상당히 즐기는 편이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뜨거운 설렁탕으로 흘린 땀을 보충한다. 닭 대신에 오리를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국 요릿집에서 종종 새우 프라이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점심 저녁을 삼겹살로 대신하는 독특한 부류들도 가끔 보게 된다. 말 그대로 식보가 약보이니 무엇이든 든든히 잘 먹고 잘 소화시키면 그만한 몸보신이 따로 있으랴.

 보양식으로 딱히 어느 음식 하나를 파고드는 성격이 아니어서 특정한 것은 없다. 대체로 찬 음식으로 냉면과 막국수, 콩국수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덤으로 홍어애탕을 가까이 한다. 홍어는 겨울 어족이나 지금은 사철 먹을 수 있다. 설렁탕과 해장국도 물론 그 중 애호하는 복중(伏中) 메뉴에 속한다.

 여름 보양식의 대표 주자 삼계탕이라면 동인천역 건너에 있는 인현통닭이 먼저 떠오른다. 뚝배기 내용은 다른 점포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 명성만큼은 선뜻 발길을 끈다. 중복쯤에는 번호표를 든 채 용동 큰우물께까지 길게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보신탕은 먹을 줄 모르나 중구 내동의 월아천이나 신포시장 안의 오래된 북청집 같은 곳이 추천할 만하다. 한때 북청집에는 인천의 명사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근처에는 훌륭한 숙수가 내놓는 장어집이 없는 까닭에 맛을 이야기하기가 불가능하다.

 보양식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여름 음식으로는 먼저 콩국수다. 콩국수는 점포마다 그 특색을 짚어 말하기 어려운데 용동 새집칼국수가 비교적 진한 맛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찬으로 나오는 맑은 물 오이지의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상냥해서 칭찬을 받을 만하다.

숭의동 장안예식장 뒤 춘천막국수집은 면발의 식감이 순박한 것이 특징이다. 기다리는 동안 따라주는 메밀 삶은 시커먼 물은 맛이 정다워 거푸 두 잔쯤 마시게 된다. 냉면은 역시 내동의 경인식당이다.

 과거 인천 냉면의 명성이 서울 한량에게까지도 군침을 흘리게 했을 때의 그맛 그대로, 정통 인천 냉면의 변함없는 면과 육수다. 더운 음식으로는 단연 신흥동 평양옥의 해장국이다. 미식가로 널리 알려진 고 신태범(愼兌範) 박사께서도 이 집 해장국은 믿음직하다고 했을 정도로 잡뼈에 붙은 푹 고아진 고기와 토장 맛이 구수하다. 동구청 아래에 있는 설렁탕집은 얼마 전 TV에 소개된 후 여러 주일 출입하기가 어려웠었다. 워낙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몇 십 년 단골조차도 줄을 서야 했기 때문이다. 이 집은 그냥 ‘설렁탕집’이라 불릴 뿐 상호가 없다. 홍어애탕은 신흥동 시장 초입에 있는 해남식당이 꼽을 만하다. 좀 진하게 삭힌 놈으로 한 냄비 끓이면 숨이 막힐 정도이고 몇 숟가락 만에 입천장을 해지게 한다.

뒤죽박죽 제대로 된 보양식도 여름 음식도 아닌 것들을 길게 이야기했다. 그것조차 원도심에 남은 것들만 꼽았다. 아무튼 오늘날 인천의 전통 여름철 음식, 보양식 대신에 다른 음식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간다는 느낌이다. 먹을거리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풍요해진 것도 그 한 이유요, 인천이 급속히 팽창하고 인구가 혼합되면서 토착 향토 음식점, 전통 보양식집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그 까닭이다. 인천의 ‘옛 맛’을 보존하고, 재현해 내는 것. 그런 일이 진정 인천 가치 창조의 한 실제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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