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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강 김락기
지금은 21세기 초반이다. 태평양의 온도 변화에 따라 엘니뇨다, 라니냐다 하면서 또 올 여름 중복 더위를 맞는다. 참 무덥다. 한반도의 중원인 충주 수안보는 땅속에 뜨거운 온천수가 끓고 있음에도 서울보다 덜 덥다. 이에 폭염도 식힐 겸 수안보 관련 여름 시조 한 수를 읊어본다.

 < 여름 - 綠(록)>

 - 산 뽕잎 푸르다 못해 마냥 반짝이누나/소쩍새 우는 밤에 잠겨설랑 어디 보라/속 깊이 끓지 않으면 나올 색이 아니다.-

 이는 본인의 졸작 시조 ‘수안보 사계’ 중의 일부다. ‘시조(時調)’는 이름 그대로 그 시대 상황을 반영해 지어 읊고 감상하는 시가다.

 우수한 한글로 지은 한겨레의 고유한 전통 정형시! 마침 지난 7월 12일에는 제8회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42개국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많은 외국인들이 왔다. 차제에 정부 관련 부처에서도 해외에서 운영하는 한국어 보급기관의 명칭을 ‘세종학당’으로 통합한다고 했다. 고무적인 일이다. 머지않아 한글의 향기는 마른 초봄에 난 들불처럼 이 지구별 나라 곳곳에 번질 것이다.

 여기에 발맞춰 우리 시조도 함께 보급되면 얼마나 좋으랴. 여러 나라에 있는 세종학당을 통해 한글로 지은 시조를 소개하고, 시조 작법을 가르쳐서 직접 한글로 읊조리게 해보자. 단순히 한글을 알리는 차원을 넘어 우리 민족의 활달하고 정감 넘치는 무형의 정신문화까지 몸소 느끼게 될 것이 아닌가. 시조는 한글로 직접 읊어야만 그 진미를 알 수 있다.

단순히 우리 시조를 언어체계가 다른 외국어로 번역해 알린다고 해 곧 세계화가 된다고 할 수는 없다. 외국인이 한글을 익혀서 직접 감상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한글로 된 우리 시조에 자국어로 한글발음 표기를 한 후 자국어 번역문을 함께 실어보자. 그러면 먼저 한글 발음으로 읊고 나서 자국어 번역문을 보고 내용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편, 지난 6월 말에는 국립한국문학관 설립 부지 선정과 관련해 전국 지자체별로 유치 운동이 과열돼 무기한 연기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올해 새로 제정된 문학진흥법에 근거해 추진된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시조를 홀대하는 일(?)이 생겨 가슴을 쓰리게 한다.

그러잖아도 시조가 학교 교과서에도 제대로 실리지 않아 안타까운 터에, 그 문학진흥법 제2조 제1호 문학의 정의에 ‘시조’와 ‘아동문학’이 빠져 있다고 동화작가 조대현 선생이 모 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았다.

 그래 확인해보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등"이라고 돼 있었다. 엄연히 문학의 한 장르인 시조를 발의자나 관계 당국에서 간과한 점도 아쉽지만 본인을 포함한 우리 시조단의 무관심도 문제라면 문제라 하겠다.

 선조들이 물려주신 전통의 우리 시조는 요즈음 이 시각에도 엄연히 살아남아 우리 곁에서 창작돼 가곡이나 창으로 불리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가 있다면 시조야말로 그러하다.

이러한 시조를 귀히 모셔 장려하고 홍보하지는 못할지언정 우리 스스로 이리 소홀히 하다니 세계화는 어느 세월에 할까? 마침 아동문학계에서는 아동문학을 문학진흥법 적용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시조도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 관계당국의 확실한 조치를 기대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 시조단 일각에서 사뭇 뜻깊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시조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사업이 그것이다. 본인이 몸을 담고 있는 (사)한국시조문학진흥회도 이에 기꺼이 동참해 협조하기로 했다. 소속 전문가들이 모여 시조 형식의 통일화 내지 표준화 방안(가칭)을 만들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선진 문화 국가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국가의 문화예술 당국이 당연히 앞장서서 보존하고 장려해야 할 일을,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자생 문화예술단체가 추진한다는 것이 되레 슬프기도 하다.

 정신문명이 고도화돼 가는 시방은 21세기 초반. 이러한 일들이 밑돌이 돼 어느 날엔가 세계인 누구나 쉬이 우리 시조 한 편씩을 읊조리고 감상하는 때가 닥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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