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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석 남양주시부시장

새마을운동 시절 시골집 전원주택 이야기다. 농촌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 소득이 좋아진 부부가 살던 집을 철거하고 밭 가운데 전원 양옥주택을 지었다. 자기 밭 산기슭에 자리한 전원주택은 빨간 벽돌에 보라색 담장으로 멋지게 꾸몄다. 아내는 집을 완성하자 자랑을 하고 싶어 서울 사는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새 집이 완성됐으니 한번 놀러와"라고 말했다.

 서울 친척은 옛날 집을 알기에 버스를 타고 친척집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쉽게 찾은 옛집은 사라지고 새로운 집이 밭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을 발견한 친척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먼저 울타리를 찾아봤다. 집이라는 것이 울타리가 있게 마련이고, 수수깡 벽을 따라가면 대문을 만나게 되니, 이 대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가겠다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사실 서울 사는 친척은 평소 아침 출근길에 대문에 인사하고 나오고 저녁에 퇴근해 집 앞에 도착하면 또 인사를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1970년대 서울집은 ‘보로꼬 울타리’ 위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세워 도둑의 침입을 방지하는 요새였다. 큰 대문은 설치하는 날 한 번 열고 며느리 장롱 들어오는 날 두 번 열고 대형 냉장고 입고(入庫)되는 날 세 번 여는 것이 전부였다.

일반적으로 작은 문을 하나 더 만들어 두었는데 이를 ‘개구멍’이라 해서 가로 50cm, 세로 110cm 정도여서 아침과 저녁에 허리를 구부리며 몸을 숙여 인사를 해야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서울 손님은 이른바 ‘개구멍’은 아닐지라도 대짜 대문이 어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찾은 것이다.

결국 울타리도 없고 대문도 없는 양옥집 전원주택으로 들어갈 방도를 찾지 못한 서울 친척. 당시엔 이장님 집에만 교환 전화기가 있어서 서울 손님은 연락할 방법도 없고 해서 집 주위를 서너 바퀴 빙빙 돌며 대문을 찾다 결국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만다. 사실은 그냥 올라서서 현관문을 열면 방으로 들어가도록 편리하게 집을 지었지만, 서울의 철옹성 집에 살던 손님은 대문 없이 현관으로 들어서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골 친척은 다음 날 전화로 "어찌 어제 오신다더니 아니 오셨습니까?"라고 묻자, 서울 친척 말하길 "아니, 집을 지으면 대문을 달아야 들어가지 어디로 들어간단 말이오?"라고 한다.

 요즘 세대는 컴퓨터를 윈도우라 부른다. 대문을 거치지 말고 이사짐 나르듯 창문을 통해 넘나들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서울 친척집처럼 넓은 대문을 닫아두고 좁은 문으로 다닐 것이 아니라, 아파트 동호수만 알면 곧바로 15층 아파트 아들 방 창문으로 직행하라는 뜻으로 ‘윈도우’라는 작명이 나온 듯 여겨진다. 드론이라는 것도 나와 자잘한 배송품을 창문으로 날아와 문을 두드리고, 드론에 설치된 단말기에 카드를 대면 요금을 받고 영수증을 발급해주고, 바르르 떨면서 사무실을 향해 간다고 한다.

 더 이상 대문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아파트 철문은 단단히 잠그고, 창문마저 커튼으로 가리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걱정해 본다. 정보를 가득 실은 드론이 아파트 위에서 맴돌고 있는데도 말이다. 앞으론 혹시 모를 일이지만 물건을 주문하면 CD 한 장이 배송될 수도 있다. 소비자의 집에 있는 프린터에 연결해 배송받은 CD프로그램을 구동시키면 원하는 장난감, 인형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기존 시장에서 옛날 방식으로 장사를 하려는 ‘레드오션’(Red ocean. 이미 잘 알려져 있어 경쟁이 매우 치열해 붉은 피를 흘려야 하는 경쟁시장)을 버리고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블루오션’(Blue ocean. ‘미개척시장’이라고도 불리며 레드오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이제 전원주택을 짓는 일의 마무리는 창가에 드론 착륙장을 설치하는 일이며, 도시와 농촌이 차별되지 않는 미래를 지금 당장 준비하는 일은 모든 것을 뒤집어 생각하고 한 번 더 곱씹어 보는 혁신의 자세다. 지폐를 손가락으로 전달하는 시대가 아니라 손끝으로 톡 두드리는 모바일 화폐의 새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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