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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행정학박사
고이라는 잉어는 자신이 자라는 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작은 어항 속에서는 기껏해야 8cm 정도 크지만, 연못에서는 15~25cm까지, 그리고 강에서는 무려 120cm까지 성장합니다. 같은 종인데도 이렇게 성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120cm까지도 자랄 수 있는 ‘나’인데, 이런 ‘나’를 몰라보고 작은 어항 속에 놓이면 아마도 분노하고 원망하면서 사는 게 우리들의 일상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고이는 주어진 환경에 놀랍도록 적응하면서 자신을 변화시킬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 놓이든 고이는 행복할 수 있을 겁니다.

 주위 환경과 상황에 나를 기꺼이 변화시킬 때 비로소 성공과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신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 대한 불평과 불만, 분노와 원망 대신에 즐겁게 그 환경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은 자신이 어항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언젠가 강물 속에서 노닐 것이라는 ‘꿈’이 없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꿈을 잃은 존재는 늘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 그리고 저주를 하며 살아갈 테니까요. 꿈은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입니다. 그 꿈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반드시 이뤄진다고 해요. 왜냐 하면 꿈이 우리를 준비하도록 동기가 돼주고, 준비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고독함과 힘겨움을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쌓여 결국 꿈을 이루게 되는 겁니다.

 전쟁이 끝난 후 우리나라는 전쟁의 흔적인 잿더미로 뒤덮였고, 거리에는 배고파하는 어린이들로 가득 찼습니다. 굶주려 울부짖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님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들의 마음은 아마도 ‘잘 살아야겠다’는 것으로 가득 찼을 겁니다. 그래서 삽과 망치를 들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아이들 입에 밥을 넣어주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공부시키는 길밖에 없다며 논을 팔고 소를 팔아 자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부모님들의 강렬한 꿈, 그 꿈이 결국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줬습니다.

 중국 역사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 아마 사마천일 겁니다. 그에게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적이 있었습니다. 그를 시기하던 관료들이 음모를 꾸며 중범죄자가 됐던 겁니다. 당시의 관습을 따르자면, 죽음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지키든지, 아니면 자신의 생식기를 자르는 부형을 받아들임으로써 비겁하게 살아나든지,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명예롭게 죽든가, 아니면 비겁하게 살든가, 이 두 개뿐인 선택지 중에서 그는 놀랍게도 부형을 받아들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살아서 이뤄야 할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관이던 아버지가 사마천에게 "주공이 세상을 떠나고 500년이 지나자 공자가 나타났고, 공자 이후로 500년이 지나 지금에 이르렀구나. 그러나 공자가 쓴 「춘추」의 뒤를 이어, 찬란했던 시대를 기록해 역사로 전해줄 사람이 없구나"라는 말씀을 하자, 사마천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버님, 걱정 마세요. 제가 반드시 쓰겠습니다."

 이 말이 사마천의 꿈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기」가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남자 구실도 못할 비겁한 사람"이란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역사서를 쓸 수 있게 한 힘은 바로 역사서를 쓰겠다는 강렬한 꿈이었습니다.

 강렬한 꿈은 고이처럼 외부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게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꿈을 꿔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희망이고,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할 이유니까요.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운영되는 지역민참여보도사업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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