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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가 오랜 시간 동안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돼 온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들까지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등 몇 가지 점에 대해 위헌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상되는 사익(私益)의 침해보다 기대되는 공익(公益)의 실현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헌재 판단의 근간이다.

 사실 요즘 시대에는 사적 부문에 대해서도 공공적 책임을 확장시키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서 사적 부문의 부패 등에 대해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기도 한다. 헌재는 금융기관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경우 수수액에 따라 가중처벌하도록 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일명 특경가법)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2012. 12. 27. 2011헌바217).

헌재는 "금융기관은 비록 사기업이지만 국민경제와 국민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뒷돈을 받으면 엄하게 처벌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러한 종전의 헌재의 태도를 고려하면, 이번 김영란법에 대한 합헌 결정은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어떻든 향후 우리 사회에 미칠 김영란법의 파급효과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어떤 사람은 "이제 대한민국 사회는 김영란법 이전의 시대와 김영란법 이후의 시대로 구분될 것이다"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부에서는 "기득권층과 고위층 인사들이 온갖 편법과 탈법을 동원할 것이기 때문에 부패의 관행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회의적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어떻든 마침내 우리나라에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추방하기 위한 강력한 법제가 어렵사리 마련됐다는 점은 환영할 일이다. 따라서 일부 미흡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이 법이 본래의 취지(청렴·공정사회의 구현)를 잘 실현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협조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청렴·공정사회를 구현함에 있어서 김영란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즉, 김영란법을 마련했다고 해서 저절로 청렴·공정사회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부패와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명검(名劍)’만으로는 부족하며, 명검을 잘 다룰 수 있는 ‘명인(名人)’과 ‘명기(名技)’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좋은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며, ‘바른 운용’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문제점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제도 탓으로만 돌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나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운용’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사람이 이를 ‘악의’로써 잘못 운용하면 나쁜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비록 제도가 좀 미흡할지라도 사람이 이를 ‘선의’로써 잘 운용하면 좋은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오·남용해서 표적수사나 먼지털이식 수사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종래 ‘정치성·편파성’을 자주 의심받아 온 검찰이기에 향후 ‘빅 브라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따라서 김영란법 시행을 전후해 ‘검찰개혁’을 위한 법제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야 3당이 공동발의할 예정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일명 공수처) 신설에 관한 법안은 고위공직자의 범죄와 정치자금법 위반, 직권남용 등을 공수처에서 수사하도록 하고 있는데,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분산·견제하는 데 취지를 두고 있다.

 이제 여당과 검찰은 ‘검찰의 셀프개혁’에 의존해온 종래의 태도를 바꿔야 하며, ‘국민의 검찰’로 개혁하기 위한 야당의 노력과 국민들의 여망에 적극 부응해야 한다. 검찰권 행사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김영란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악법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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