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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범 아나운서
여러분은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80년 동안이나 동고동락한 미국의 어느 90대 노부부는 그 비결로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을 꼽았습니다. 99살 짐 할아버지와 97살 노니 할머니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 노부부는 올해로 결혼 80주년을 맞았습니다. 강산이 여덟 번이나 변한, 실로 긴 세월입니다.

짐 할아버지는 80년 전 소개팅에서 노니 할머니의 아름다운 금발과 춤 솜씨에 반해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이, 말 그대로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지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주변 사람들에 의하면 이 노부부는 금슬이 매우 좋은 커플입니다. 그렇지만 다툴 때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냥 넘어가지 않고 꼭 화해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회상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부부 사이의 다툼도 마무리가 중요한 모양입니다.

 짐 할아버지와 노니 할머니가 말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의 진짜 비결은 ‘경청’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잘 들어주기만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부부 사이에만 적용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부모 자식 간, 가족 간에도 통용되는 원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 자식 간에 경청은커녕 대화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 가정 내에서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닙니다.

청소년 상담치료 기관인 마인드힐링연구소와 모 일간지가 공동으로 조사한 것이 있습니다. 학교나 가정에서 절도, 자살 시도, 폭력, 게임중독 등의 심각한 문제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경찰서를 찾게 된 청소년 168명의 심리상담 내용을 분석한 것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문제를 일으킨 아이 뒤에는 ‘미성숙한 부모’가 있었습니다. 이들 부모들은 성공만을 지향하거나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모습을 아이들에게 노출해왔습니다.

 심리상담 결과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텔레비전이나 이웃을 향해 욕하는 부모의 모습을 자주 봤다고 답한 아이들은 상대의 말에 쉽게 모욕감과 수치감, 열등감을 느끼는 분노조절장애 증세를 보였습니다. 부모의 과격한 언어습관에 악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불안 심리도 아이들의 마음을 병들게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거나 가출해서 폭력이나 절도를 저지른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로부터 "짜증난다", "살기 싫다"는 등의 말을 자주 들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마인드힐링연구소 윤재진 대표는 "부모가 삶에 대한 불만과 부정심리를 그대로 표출하면 아이의 정서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자녀와의 대화를 등한시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게임중독이나 SNS에 빠지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아이들은 부모와의 평균 대화시간이 하루 30분 이내였고, 맞벌이 가정의 자녀가 상당수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귀가한 부모로부터 받는 질문은 "밥은?", "학원은?" 정도가 다였다고 합니다. 부모로부터 응당 받아야 할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니까 그것을 게임이나 SNS 등으로 보상받으려 했다는 설명입니다.

 끝으로, 지나치게 좋은 성적을 강요하는 것 역시 자녀의 절도나 학교 폭력의 단초가 됐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상당수 아이들은 공부를 꽤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시험 성적이 떨어지면 집에서 죄인 취급을 받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평소 갖고 싶은 물건을 훔치거나 자신보다 공부 잘하는 경쟁자를 괴롭히는 폭력성을 보였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모의 강압적인 교육방식이 아이들을, 감정에 무감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번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아무리 성적이 좋고, 교우관계가 원만한 학생이라도 부모의 잘못된 언행에 따라 절도나 폭력의 가해자, 자살이나 게임중독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문제아는 없다. ‘문제부모’가 있을 뿐이다"고들 하는데 이번 연구에서도 다시 한 번 입증됐습니다. 전문가들은, 감정 발달은 후천적으로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학습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먼저 되돌아보는 것이 아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자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잘 들어주기만 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자녀들 혹은 가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경청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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