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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행정학박사

서로 사랑하던 남녀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5년 동안이나 외국 출장을 떠나게 된 남자는 출국하기 며칠 전에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 당신에게 장미꽃을 보낼 거야. 만약 그 장미들이 100송이가 아니라면 나를 기다리지 말고, 만약 100송이라면 나를 꼭 기다려줘."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어김없이 꽃이 배달됐습니다. 그러나 몇 번을 세어 봐도 99송이였습니다. 여인은 울었습니다. 남자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어느 날, 남자는 귀국을 했지만 여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어렵게 여인을 만난 남자는 그 사연을 물어보았습니다.

 "장미를 세어봤지만 99송이였습니다."

 남자는 "맞아요. 그럼 꽃과 함께 배달된 카드는 보았나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카드를 받았는지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알고 남자는 미련 없이 떠났습니다. 사실 여자는 그가 보낸 장미다발 사이에 끼어둔 카드, 그리고 그 카드 속의 글귀를 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카드엔 이런 글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마지막 한 송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당신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 여인이 끝까지 읽어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척 급한 성격을 가졌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런 성향을 가리켜 ‘빨리빨리 문화’라고도 하지요. 그러나 사실 아름다움은 가장 낮은 곳에서 볼 수 있고, 가장 느린 속도에서 느낄 수 있는 행운일 수가 있습니다.

 나무는 어느 해가 되면 열매 맺기를 포기하곤 합니다. 이를 ‘해거리’라고 부릅니다. 해거리를 하는 동안 나무는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활동 속도를 최대한 늦추면서 오직 재충전을 하는 데에만 집중한다고 해요. 이렇게 1년 동안의 해거리, 즉 휴식이 끝나면, 그 다음 해부터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무의 해거리는 우리들에게 휴식하기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틱낙한 스님이 휴식의 중요성을 자동차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로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가 제 기능을 다하려면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모두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약 브레이크가 고장 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도 큰 사고가 일어날 겁니다. 브레이크가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라면, 가속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멈춤과 가속이 둘이 아니라 바로 하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뤄야 할 것들에 집중을 하며 삽니다. 오로지 가져야 할 것, 올라가야 할 것을 위해서는 오늘의 휴식과 기다림을 그저 사치라고 여기며 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기다림과 휴식은 열심히 달리기 위해 심신의 체력을 강건하게 해주는 브레이크의 역할을 합니다. 앞만 보고 가속페달을 밟는 것이 성공을 위한 씨앗이라고 한다면, 쉬면서 많은 사색을 하며 한가로이 보내는 휴식의 시간은 행복을 위한 씨앗을 준비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저 높은 산을 정복하려고 전투하듯이 올라가는 대신에 잠시 멈춰 서서 새 소리와 풀 냄새도 음미해가면서, 또 계곡물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합창에 미소로 화답을 하면서 세상을 관조하는 느림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체코 소설가인 밀란 쿤데라가 쓴 「느림」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한 사내가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횡단한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야만 하는 중요한 문제를 떠올린다. 그 순간 사내의 걸음은 느려진다."

 잠시 멈춰 설 때만이 99송이의 장미꽃을 두고 아파하고 절망하면서도 혹시 내가 놓치고 있던 카드 속의 마지막 한 송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운영되는 지역민참여보도사업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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