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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어떤 나라 국민들의 준법정신과 교양의 수준은 그 나라의 교통질서를 보면 확인된다. 예를 들어 보자. 중국인들의 교통질서의식은 과거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미흡하다. 신호등과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도로를 횡단하는 일이 다반사다. 어떤 한국인이 중국 단체관광길에 교통체증을 만나 시간이 좀 지체됐는데, 체증구간을 벗어난 후 운전자가 차를 세우더니 "예정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면서 번호판을 떼어 운전석 옆에 두고 단속카메라를 무시하면서 과속으로 쌩쌩 달려 아연실색했다는 얘기도 있다. 중국은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를 엄하게 처벌한다. 음주운전으로 2명 이상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를 사형에 처하기도 한다. 운전면허 따기도 매우 어렵다. 연변대학의 한 교수는 여러 차례 낙방 후 마침내 면허시험에 합격했을 때 너무 기뻐 눈물을 왈칵 쏟았다고 경험담을 들려줬다.

일본인들의 교통질서 의식은 매우 높다. 신호와 제한속도 및 차간 거리를 잘 지키고, 모든 차량이 좌·우회전 시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정지하며, 좀처럼 경적도 울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중국과 일본의 중간수준일 듯하다.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곡예하듯 앞차를 추월하는 운전자들이 여전히 많다. 한편, 이명박 정부 시절 국민부담 완화를 이유로 운전면허 시험을 너무 쉽게 바꾼 이후에 교통사고가 늘고 있다는 진단이 있다.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쉽게 운전면허를 따고 있는데, 상하이시 등 일부 지역에서는 한국에서 딴 운전면허의 안전성을 불신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니 창피스런 일이다.

 미국인들의 교통질서 의식도 높다. 스쿨버스가 정차해 학생들이 승·하차할 때에는 그 뒤에 운행하던 차량들이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일시 정차한다. 또한, 도로에서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진행방향뿐 아니라 반대편 차선에서 운행하던 차량들도 모두 일시 정지하는데, 그 이유가 "앰뷸런스 등 긴급차량이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좌·우회전이나 유턴을 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럽인들의 교통질서 의식도 높다(이탈리아처럼 교통질서가 문란한 예외적인 경우도 있기는 하다). 주행차선과 추월차선을 잘 지켜 운행한다. 특히 운전자에 대한 휴식권 보장과 근로시간 제한은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한다. 최대 운행시간을 하루 9시간, 1주일에 56시간으로 제한하고, 2주간 9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며, 4시간 30분 운행에 최소 45분의 휴게시간을 주도록 하고, 하루 11시간을 나누어 쉬되 두 번째 휴식시간을 9시간 이상으로 한다. 차량 운행기록을 경찰이 불시단속해 위반사례가 있으면 벌금을 매기거나 영업정지·취소 등의 행정제재를 한다. 그리고 운전자의 근로시간이 다 채워지면 운행 중이라도 휴게소에서 미리 대기하던 다른 운전자와 교대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유럽에서 단체여행 중에 버스가 고장 나서 시간이 지체됐는데, 목적지 호텔을 불과 몇 킬로미터 남겨두고 운전자가 자신의 근로시간이 다 끝났다면서 핸들을 놓아버리는 바람에 낭패를 당했다는 얘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관광버스 기사에게 팁을 몇 만 원 주면 예정된 관광지 외에 다른 지역도 둘러볼 수 있지만, 유럽에서는 불가능하다. 운전자가 "계약 내용에 없는 요구사항은 들어줄 수 없다"면서 거절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모처럼 휴가여행길에 올랐던 사람들이 대형차량과 충돌해 인명피해를 당한 안타까운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전남 여수에서 트레일러 운전사가, 지난달 17일에는 영동고속도로에서 관광버스 운전사가 졸음운전으로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정부는 뒤늦게 버스·화물차의 운전자에게 4시간 운행마다 30분 휴식을 강제하는 법규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좀 더 일찍 마련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선진국의 교통법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창의적(?)인 제도를 만들기 위해 시간·노력·비용을 들이기보다 선진국의 교통법규를 베끼기라도 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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