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들녘에선 곡식이 영글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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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들녘에선 곡식이 영글어 가고 있다
원현린 주필(主筆)
  • 기호일보
  • 승인 2016.08.22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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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主筆)
한반도가 펄펄 끓고 있다. 더위를 먹었다. 절기로는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폭염이 물러가지 않고 있다.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의 순환 질서가 깨지고 있는 요즘이다. 절기상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가 지난 지도 보름이 됐다. 내일이면 더위를 처단하고 본격 가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처서(處暑)다. 처서는 입추와 백로(白露)사이에 드는 절기다. 이 무렵이면 입추까지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이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법 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고 한다. 처서에는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등 전해오는 이야기도 많다. 이처럼 계절의 흐름으로 보아 더위가 한풀 꺾일 때도 됐다. 하지만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더위다.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염천(炎天)이다.

 봄에 뿌린 씨앗이 여름 내 자라나야 하는 농작물이다. 계속되는 가뭄 속에 논밭이 타들어가니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에 거둬 겨울에 저장할 농작물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

 어느 해보다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이다. 더위에 지친 생활 속에서도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저 멀리 남미 브라질 리우에서 전해오는 메달 소식에 그나마 더위를 잠시 식히곤 하는 시민들이다.

 흔히들 더위가 무서운가 추위가 무서운가라는 얘기들을 한다. 여름 혹서기에는 차라리 추운 것이 낫다 하고, 한겨울 혹한기에는 그와 반대로 더운 것이 낫다고 한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동장군(冬將軍)이 몰려온다 하여 몸을 움츠린다. 여름 더위는 불꽃의 제왕,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가 관장한다. 단연 임금제(帝)자를 쓰는 염제가 동장군보다 위다. 올 여름은 염제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나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 하여 내가 더위가 되어 봤다. 그랬더니 견딜 만했다. 마음 한번 바꿨더니 더위의 느낌 정도가 달라진다. 그렇다! 매사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래도 올 여름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덥다.

 스마트폰을 열어 며칠 전 한 친구가 보내준 이해인의 ‘여름일기’라는 시 한 편을 떠 올리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땀을 많이 흘리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 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나사(NASA·미국항공우주국)가 최근 "올해 7월이 세계 기상 관측을 시작한 1880년 이래 가장 무더웠던 달로 기록됐다"고 발표했다. 나사는 또 2090년께면 온난화로 인해 한국에서는 겨울이 소멸할 것이라 예견하기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기상청도 한반도 기온이 지난 100년간 1.8도 오른 데 비해 2050년까지는 그 2배인 3.2도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2050년대 연 강수량도 1970~2000년 평균 대비 15.6%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로 인해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지역은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 도시침수 등의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고된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초윤장산(礎潤張傘)이라는 말이 있다. 주춧돌이 촉촉해지면 비가 내릴 징조이니 미리 우산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가뭄의 대비도 마찬가지다.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대비해 막을 수 있는 재난이라면 사전 준비에 철저를 기하는 것이 최선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각종 재난은 사후에 분석해보면, 사전대비하고 주의를 기울였다면 얼마든지 예방 가능한 재난들이었다.

 다음 달 7일이면 찬이슬 내려 가을이 깊어감을 알리는 백로이고 15일이면 추석이다. 아무리 가뭄이 길다한들 그 옛날 칠년대한이나 같으랴. 늦더위 있다한들 얼마나 가겠는가. 계절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을 게다. 곧 서리 내리고 단풍지고 흰 눈이 내릴 것이다.

 가뭄이 오래 지속됐지만 그래도 농촌 들녘에선 곡식이 알알이 영글어가고 있다. 가을걷이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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