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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운 객원논설위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메이저리그의 강타자 지안카를로 스탠튼(미국 마이애미 말린스 외야수)을 너무 잘 알고 좋아한다. 올해 메이저 리그 올스타전에서 홈런 더비 우승을 차지했고, 배트가 부러지면서도 담장을 맞히는 2루타를 치는 대단한 선수다. 그동안 언론이나 기자들은 이 선수의 이름을 지안카를로라고 읽고 쓰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공식 한국어 표기가 ‘장칼로’라고 바뀌었다. 국립국어원이 현지 발음과 최대한 비슷하게 표기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장칼로로 바꾸어 규정한 것이다.

 수년간 아무 탈 없이 그를 지안카를로로 호명하던 언론매체들과 팬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지안카를로와 장칼로는 다른 사람인가? 우리는 2000년에 의료보험을 건강보험으로 변경하고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명칭을 일제의 잔재 청산이라는 명분하에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더 나아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도로명의 변경으로 아직도 옛 주소와 신 주소의 혼란 속에서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여기에 우편번호까지 다섯 자리로 개편을 한단다.

 선진국 개념도 충분히 이해하고, 규모가 커졌으니 확대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여섯 자리의 경우의 수와 다섯 자리의 경우의 수는 당연히 여섯 자리가 더 많다. 새 우편번호는 소방, 통계, 우편 등 모든 공공기관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하천, 철도, 대로 등 객관적인 지형물을 기준으로 변경된다. 배달 경로가 최적화되고 우편물이 빠르게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진행 과정과 절차에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안카를로와 장칼로, 둘 중에 어떤 게 더 원어와 음운학적으로 더 가까운지는 모르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이나 기자, 아직 바뀐 대로 ‘장칼로’라고 부르기에는 익숙하지 않다. 익숙해지면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발상은 무책임하기만 하다. 물론 원칙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거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다수가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새롭게 바꾸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제대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한다. 제대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만들기 전에 한 번 더 고민하고, 고민해서 안 되면 과감히 포기하든 고치든 해야 한다.

 야구 팬들이 얼마나 뜬금없다고 느낄지 당사자들은 아는 지 모르겠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에도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으로 존중한다는 예외 조항이 적시돼 있다. 한마디로 국립국어원의 시각에서는 지안카를로가 익숙치 않으니 결정한 것 같다. 문제는, 야구 팬들이 4년이란 시간 동안 눈과 입으로 익혀온 익숙한 이름을 놔두고 같은 사람에게 낯선 이름을 들이밀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국립국어원의 경우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다른 정책은 이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결정했으면 한다. 하나의 결정이 비용이 많이 들고 너무 불편하다면 그것은 옳은 정책이라 할 수 없다. 행정 동명과 도로명 주소 변경, 심지어 지금은 방위의 개념이 틀렸다고 인천시 구군에서는 명칭 변경을 고민하고 있다.

 택배아저씨는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 동네 이름이 어찌 되냐고" 택배 아저씨도 불편하고 나도 불편하다. 역사와 지명을 고려해서 바뀌었다는데 지금의 건물 중심으로 바꾸거나 일부는 너무나 어색한 지명이 많다. 다수가 불편함에도 곧 나아질거니 참아보란다. 이솝 우화 ‘늑대와 소년’처럼 자꾸 거짓말 하다 보면 늑대가 나타나도 믿지를 못하는 상황이 올수 있음을 아는지. 하나만 더, 그동안의 행정 우편물이나 인쇄매체, 관련 서류철에 도로명 주소 바꾸고, 우편번호 를 변경하면서 바꾸고, 물품 교체하는 업소는 살림살이가 나아질까. 변경해야 하는 물품의 교체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 지안카를로면 어떠냐고 물어 본다. 국립국어원의 잘못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고 보편타당성에서 정책이나 일을 결정하자는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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