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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9월의 첫날, 오늘은 ‘통계의 날’이다. 이날은 우리나라 근대 통계의 시작으로 평가되는 ‘호구조사규칙’(전문 7개 조의 규칙)이 1896년 9월 1일 처음 마련된 것을 기념하고 통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지정한 기념일로서, 1995년 통계청이 제정했고, 2009년 4월 통계법에 의거 법정기념일로 격상됐다. 오늘날 사회가 복잡다단해짐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통계가 널리 활용되고 있고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작성되는 각종 통계의 ‘신뢰성’에 대해 적잖은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7월 중순 장신중 전 양구경찰서장은 경찰이 검거 실적을 부풀리려고 조작을 일삼고 있다고 폭로했다. "성과주의가 본격화되면서 통계를 완전히 조작·왜곡해 경찰 지휘부 실적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은 통계 조작·왜곡 사례는 아마 훨씬 많을 것이다.

 지난달 11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통계청의 10년 뒤 노인 인구 예측이 실제보다 10% 정도 과소하게 계산됐다고 비판했다. 통계청은 2011년 발표한 ‘장래 인구추계’(정부와 민간의 장기 재정 계획 등의 기초로 활용된다)에서 65세 이상 인구를 2026년 1천84만 명으로 추정했으나, KDI는 107만 명 이상 많은 1천191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통계청이 반박 자료를 내놨지만, 2011년 발표한 인구추계가 실제와 매우 큰 차이를 보여 신뢰성을 잃게 됐으며 "통계청 통계 믿다가 나라살림 구멍 날라"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이 많다. 지난 4월 실시된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여당의 압승’을 예견했던 다수의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야당의 승리’로 나와 국민들이 깜짝 놀랐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게 됐다고 본다. 최근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율, 여야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등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있는데, 얼마나 정확하게 민심을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러한 여론조사가 국민들의 여론을 왜곡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오도하는 결과를 빚는 것은 아닌지 적이 우려된다.

 그 밖에도 정부는 중요한 정책 결정에 있어서 여론조사 결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 합리성에 의심이 간다. 예컨대, 지난해 12월 법무부는 어설픈 여론조사 결과에 의지해 경솔하게 사법시험 폐지 유예 방침을 공표했다가 로스쿨생들의 반발과 여론의 질타로 곤혹을 치른 적이 있고, 최근에도 국방부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등 주요 정책 방향의 결정에 있어서 여론조사 결과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이런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설문을 어떤 내용으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차이 난다).

 때로는 의료·환경·과학기술 정책 등 지극히 전문적 사안에 대해서까지 대중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내세워 정책 결정의 근거로 삼으려는 경향마저 보이곤 하는데, 이 또한 타당성이 의심된다. 전문적 사안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인) 대중을 상대로 하기보다는 전문가그룹을 상대로 한 심층 설문조사 또는 전문가들 사이의 치열한 토론 결과에 따라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아무튼 여론조사를 비롯한 각종 통계의 작성 및 분석과 활용 등에 대해 좀 더 면밀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신뢰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통계의 신뢰성이 신뢰사회의 기초이며 국가 발전을 위한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한편, 민간통계의 활성화 등 통계제도의 합리화를 위해 통계법의 개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 통계를 배우는 첫 수업시간에 수학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생생하다. "통계의 생명은 정확성이며, 정확한 통계는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통계의 정확성을 해치는 인위적 행위는 도리어 사회 발전에 큰 해악이 된다는 점을 여러분은 꼭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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