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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홍 시인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초기 경전인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숫타니파타라 불리는 65권 70책, 인도로부터 스리랑카에 전해진 것으로 스리랑카·타이 등의 남방 불교권에서 쓰인다)의 시경(詩經)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걸림 없는 자유의 의지로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라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무소(코뿔소)의 뿔이 앞으로 향한 것은 주위의 인과에 휘둘리지 말고 거침없이 전진하는 바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걸림 없는 자유와 더불어 현실의 압박에서 벗어나고픈 일탈을 꿈꾼다.

 그러나 현재의 생활은 사면팔방에 그물처럼 촘촘한 규제와 약정(約定)들로 둘러 싸여서 숨도 쉬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답답한 나날이다. 과연 요즘에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가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뭐, 속 시원하게 그렇게 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구경이라도 하게 해서 필자의 갈증이나 면하게 해줄 수 없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에 그런 사람을 보았다. 갑갑한 가슴의 체증을 뻥 뚫어주고, 청심환 역할을 속 시원히 수행해준 그 주인공은 바로 골프선수 박인비였다.

 그녀는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바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당당히, 경악할 만한 의연함으로 철벽 실력을 과시하며 정상에 섰다. 그녀에게 리우 올림픽에서 호적수는 없었다. 마치 코뿔소가 우직함과 단호함으로 한곳을 향해 돌진하듯 나흘간 18개 홀을 바람같이 돌고 돌아 깊숙한 발자국들을 골프역사에 새로 새겼다.

 필자는 말복 더위도 잊은 채, 그 놀라운 장정(長征)의 행보를 보면서 방바닥을 치며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최상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은 어느 종목이든 소중하다. 눈물과 땀으로 일군 인간 승리의 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인비 선수에게 특별히 경탄하는 이유는 경기 내내 보여준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인 압도적인 경기력과 더불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고독하고도 당당한 자세의 빛나는 구현을 보여준 점에 있다. 그 카리스마는 세계를 침묵하게 했다.

 그녀가 국가대표로 선발되기까지의 우여곡절과 허리와 왼손의 부상 상태에서의 투혼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 결과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나아가 세계 골프 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남긴 한 위대한 천재의 현신을 보게 된 감격이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문학청년 시절, 한때 습작에 몰두하며 이를 앙다물던 시기에 필자가 뇌까렸던 화두(話頭)이기도 하다. 가로막힘 없는 무애(無碍)의 정신세계를 꿈꾸며, 높은 문학정신의 열매를 맺으려 했던 노력들이 아직까지도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오늘도 그 심원한 경지를 향해 절차탁마하게 만드는 문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면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다. 그러나 극소수의 인간만이 정상에 오른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주위의 질시와 비난, 야유와 유혹, 방해와 견제를 무모할 정도로 의연하게 흘려버리고, 뚜벅뚜벅 목표를 향해 걸음을 옮긴 자에게만 정상은 손짓하기 때문이다.

 꿈과 희망을 잃고 있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권해 본다. ‘무소의 뿔처럼 우직한 마음’으로 각자 세운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 보라고. 혹여 한 우물을 파라는 식의 고지식한 권유로 생각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진정성이 담보된 격려와 칭찬이 희귀한 시대다. 까짓것 SNS류의 경박한 공치사 따위에 귀 기울이지 말고, 과감히 자신의 소신을 이끌어 보라는 필자의 당부쯤으로 이해해 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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