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강구인.jpg
▲ 강구인 용인시 처인구 공원환경과장
며칠 전 사무실 팀장들과 추석을 맞아 동사무소에서 추천받은 홀몸노인 다섯 분을 방문했다. 준비해 간 한과세트와 김세트를 드리고 호구조사 아닌 호구조사를 하며 애끓는 심정의 하소연들을 한없이 들어드렸다.

 사연도 너무나 기구하다.

 첫째 분은 다른 홀몸노인 분들이 명절에 물품 받는 것이 부러우셨던 모양이다. 형편은 넉넉하신데 외로움에 지치신 분 같아 준비해 간 선물만 드리고 바로 나왔다.

 둘째 분은 정말 어려운 분이셨다. 지하 단칸방에 사는 조카에게 얹혀 사는데 전기요금 아까워 현관 전등도 못 켜신다. 팀장 한 분이 보다 못해 30촉 백열등을 빼버리고 1만 원짜리 LED전구를 사다가 환하게 해드렸다. 1977년에 구타를 못 이겨 가출하셨다는 초로의 여인이신데, 몸 곳곳이 쑤시고 아프지만 병원 가실 엄두도 내지 못하신단다. 조카가 추석 지나면 이사 간다며 한숨만 쉬시는 모습에 무력감으로 화답하고, 동사무소 담당에게 사정을 잘 전하겠다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셋째 분은 월 11만 원짜리 원룸에 사시는데 젊어서는 인근 도시에서 주유소 두 개를 운영하며 떵떵거렸는데, 재정보증 서줬던 두 아들이 도박 등으로 전 재산을 날리는 바람에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되셨단다. 어릴 때 잘해줬던 손주들이 전화도 안 받는 것이 야속하다고 하셨다. 그 놈의 돈이 ‘웬수’라 하신다.

 넷째 분은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시라 처음에는 이상했다. 사연이 역시 기가 찼다. 한때는 인사동에서 화랑을 운영하셨는데, 20억 원 부도에 강남 아파트 두 채 날리고, 부인과 자녀들 눈치에 살 수가 없어 협의 이혼하고 떠돈다 하셨다. 기초수급자 신청해도 강남에서 월 1천만 원을 버는 사위에게 얹혀있는 의료보험 때문에 안 된다 하셨다. 우리가 방문한 아파트에 대해 여쭈었더니, 동갑인 사촌형 댁으로 옷가지만 맡겨놓고 성남에서 이리저리 떠돌며 사신다 하셨다. 그날도 우리가 뵙자고 해서 성남에서 일부러 오신 거라 하셨다. 얼마나 무안했는지 모른다. 전철과 경전철은 무료니 괘념치 말라며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키시는 혜량에 가슴이 울컥했다.

 다섯째 분은 올해 89세의 할머니셨다. 그날 복지관에서 주는 무료급식을 드시려 했는데 심한 천식으로 마침 기침이 심하게 나오는 바람에 옆 사람들에게 피해주기 싫어 식사도 못하시고 오셨단다. 우리가 들어간 원룸도 후텁지근한데도 문을 닫아 놓고 계셨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자제 분을 여쭈어 보자, 아들이 암(癌)인데도 명절이라고 며칠 전에 다녀갔다며 끔벅이시는 눈가에 이슬이 맺히신다. 우리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준비해간 상품권과 김세트를 드리고 부리나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환과고독(鰥寡孤獨)은 고래로부터 구휼대상이었다. 나이든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자식 없는 늙은이, 한 세대 전만 해도 이분들이 우리 사회를 이끄셨는데, 왜 이래야 하는 것일까? 특히 이 어르신들은 자식이 있어서 오히려 혜택에 저해가 되니 자식이 더욱 원수일레라. 아이러니컬하다. 내년도 정부 복지예산이 전체예산의 32%라 한다. 불쌍하신 이 어르신들을 좀 더 안온하게 감싸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특히 ‘사람들의 용인’에서만이라도 좀 더 행복한 어르신들이길 빌어본다. 문득 시골에 혼자 사시는 어머님이 생각난다. 자주 찾아 뵙지만.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