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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참 힘든 여름이었습니다. 잠을 푹 잘 수가 없어서 밤새 뒤척이며 보낸 하루하루, 그리고 다음 날엔 어김없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또 하루를 보내야 했던 여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어김없이 가을이 손짓하고 있군요.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기운을 느끼니 말입니다.

 행복!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무지개 같은 것일까요? 가끔씩은 행복이란 기다려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로 한 그 날을 설렘과 흥분으로 기다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부자의 부인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줄 화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매우 유명한 화가를 만나 부탁을 하자, 부인이 누군지 모르던 그 화가는 단번에 거절합니다.

 "나 같은 화가가 그리기에는 당신은 너무 평범합니다. 나는 지금도 그림을 그려 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무척 골치가 아파요. 저기 길 건너편에 가면 한가한 화가가 있으니 그 사람에게나 가보시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길가에 한가로이 앉아 손님을 기다리던 화가에게 가서 부탁을 했습니다. 그 화가가 그린 초상화는 ‘모나리자’란 작품으로 명화가 됐습니다. 초상화를 그려준 화가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였습니다.

 그런데 다빈치는 이 그림을 그리는데 무려 4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명화가 되자 ‘모나리자’의 모델이 누구냐는 논란이 무척 많았습니다. 소개해드린 이야기도 그런 논란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사실이든지 간에 명작과 명품은 이렇게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긴 세월 동안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기다림은 휴식입니다. 달리기 위해서는 쉬어야겠지요. 그러니까 쉼은 곧 달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네 삶은 ‘쉼’과 ‘휴식’을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아이들에게 쓸모가 있는 ‘공부’만 하라며, 노는 것을 허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나무 베기 시합을 합니다. 한 사람은 주어진 시간 동안 중간에 30분가량을 쉬었습니다. 쉬는 동안 그는 도끼를 갈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시간이 아까워서 쉬지 않고 계속 나무를 베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30분간의 휴식을 취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이 베었습니다.

 막도장은 주로 나무로 만들어지고, 작은 홈이 있습니다. 그 홈 때문에 도장을 찍을 때 도장의 위아래를 보지 않고도 제대로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급 도장에는 이런 홈이 없습니다. 그래서 도장을 찍으려고 할 때마다 이리저리 세심히 살펴보고 나서야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급도장을 찍으려면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왜 그럴까요? 고급도장은 막도장을 쓸 때와는 달리 무척 중요한 서류나 계약서에만 찍을 겁니다. 도장을 찍는 순간 결정 사항을 번복할 수가 없기 때문에 도장을 찍는 순간까지도 신중히 생각해보라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던 거겠죠.

 프로 운동선수에게서도 기다림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느 일본인이 쓴 글에서, 프로 운동선수들은 자기가 가진 시간 중의 20%는 경기에 투자하고, 나머지 80%는 훈련에 투자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론 이 80%의 시간 중에는 휴식도 포함돼 있겠지요. 이렇게 휴식은 훈련을 낳고, 휴식을 하는 동안에 자신의 문제를 바로잡게 돼 결국 더 나은 선수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행복한 삶의 씨앗이 기다림과 휴식과도 같은 ‘고요함’ 속에서 발아돼, 우리들의 삶이라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찬란한 꽃으로, 그리고 향기로 거듭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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